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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9일 수요일
2012년 2월 28일 화요일
꿈, 혹은 장래희망 그리고 프랑스 파리
백 년 전통의 프랑스... 문제가 국민적 관심거리 되기도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대학 입학 자격 시험)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대입 논술 시험의 원조격에 해당한다. 프랑스에서 논술은 Dissertation이라고 하는데, 한 주어진 주제에 대해 방법론적인 성찰을 표현한다는 뜻이다. 오랜 역사와 수준 높은 문제의 출제로 이름 높은 바칼로레아는 유럽에서도 이미 하나의 모범적인 입시 모델로 자리잡았다.
9월에 새학기가 시작되는 유럽식 학제의 특수성 때문에 6월 경에 치러지는 바칼로레아는 지원하려는 대학의 전공 분야에 맞춰 계열별로 시행된다. 인문학을 전공하려면 바칼로레아 L(문학)을, 사회 과학은 바칼로레아 ES(경제-사회)를, 순수 자연 과학은 바칼로레아 S(과학), 산업 기술 분야는 바칼로레아 T(테크닉)를 통과해야 한다.
어떤 계열이건 상관없이 불어, 외국어 한 과목, 역사 및 지리, 수학, 철학은 공통 필수 과목에 속한다. 영어의 경우 외국어 선택 과목 중 하나의 선택 과목에 불과하며 필수는 아니다. 입시생은 공통 필수 과목에 지원하는 계열별로 한 과목씩 추가해 보게 된다. 바칼로레아 문학 계열일 경우는 외국어 두 과목을 더 봐야 하고, 바칼로레아 경제-사회 계열의 경우는 경제 사회 과학 과목을 추가하는 식이다.
채점 기준표, 교사 자질로 공정성 확보
외국어 시험은 필기와 회화 시험을 동시에 보고, 수학은 주관식 문제로 출제되지만, 나머지 과목들은 대부분 완전히 논술하거나 논평하라는 식의 문제로 일관된다. 보통은 논술 문제 하나와 텍스트 논평 문제 등 두 문제 중 택일하도록 되어 있다. 텍스트 논평이란 하나의 유명한 텍스트를 주고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를 보는 문제인데, 이 텍스트에 대한 개괄적 설명, 자신의 평가 등이 요구된다. 여기에서 채점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논리성과 이해력이다.
독일, 영국 등 이웃나라에는 없는 프랑스 입시만의 고유한 과목인 철학의 경우는 출제 문제의 격조 높은 수준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특히 그 해 출제된 철학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가 되며, 국민 전체가 각자 한번씩 생각해보는 문제로 인식되기도 한다.
재작년의 철학 문제가 더더욱 그러했는데, 출제된 문제는 '참을 수 없는 것은 참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였다. 93년에는 '사실은 언제나 사실처럼 보이는가?', '진리는 인간을 구속하는가, 자유롭게 하는가?' 등의 문제가, 95년에는 '미래는 근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경험은 인식의 유일한 원천인가?', '모든 이념에 대해 관용해야 하는가?' 등의 문제가 출시되었다.바로 바칼로레아 철학 과목의 존재는 근본적으로 따지기 좋아하고 토론, 논쟁이 습관화된 프랑스인들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논술 문제의 채점에서 객관성의 보장은 이곳 프랑스에서도 중요한 문제로 인식된다. 우선 바칼로레아 시험 문제는 각 도별로 다르게 출제된다. 도 교육 위원회에서 과목당 약 10여 명의 일선 교사를 선발, 소집하여 과목당 장학 감독관의 주관 아래 출제 방향에 관한 수 차례의 회의를 가진다. 참가한 교사는 최종적으로 각 하나씩의 문제를 제안하는데, 이 때 개략적인 모범 답안을 제출한다.제안된 문제 중 하나의 문제를 선택하는 것은 장학 감독관의 고유한 권한이다.
채점의 경우는 거의 모든 일선 교사들이 참여한다. 일단 채점자로 소집되면 그들은 채점의 원칙에 대한 설명을 듣과, 모범 답안 예와 채점 기준표를 지급받고 철저히 여기에 의거하여 채점한다고 한다. 채점은 과목당 20점 만점에 몇 점 식으로 채점되는데, 16점 이상이면 트레 비엥(매우 우수), 14점-16점이 비엥(우수), 12-14점은 아세 비엥(제법 잘함), 10-12점은 빠사블(합격)이라는 평점을 받게 된다.10점 미만은 물론 낙제다.
1회 채점이 원칙이어서 우리로서는 공정성 문제를 의심할 수도 있겠으나 프랑스에서 채점의 주관성 문제는 전혀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다. 채점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작성된 채점 기준표와 이미 질적 수준이 보장된 교사 자격 시험을 거친 교사들의 자질이다. 채점 기준표는 가령 어떤 대목이 나오면 몇 점을, 어떠한 요지이면 몇 점을 주라는 식의 지침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1회 채점 원칙이나 당락이 결정되는 선인 10점 미만일 경우에 항해서 다른 채점자가 한 번 도 채점하여 공정성을 보완한다. 또한 이 경우는 고등학교 전학년 과정의 성적도 참조하므로 일종의 보완적 내신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전통과 완성도가 바칼로레아의 공정성 보장
출제한 교사의 경우 만일 발생할지도 모를 문제 유출 사고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이 지워지는데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해 해당 바칼로레아가 전면 무효화되는 사고가 한두 번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바칼로레아를 치르는 이곳은 우리나라와 같이 대입 시험이 절대적 비중을 갖지 않는 데가 오랜 역사를 통해 제도적으로 정착한 터라 입시 부정이란 위험은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문제가 된다면 예의 채점의 공정성이겠지만 뚜렷한 주관성과 논리의 중요성이 이미 국민적으로 수용된 상황에서 채점 교사가 나름대로의 자율성을 가지고 채점하는 데 대해서는 어떠한 반발도 없다. 더군다나 교육의 철저한 국가 관리가 실현되고 있고, 교육에서의 부정이 거의 전무한 프랑스에서 교사가 의도적으로 주관적 채점을 하는 것은 교사 자신으로서도 아무런 이득 없는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국민 교육 교과 과정 자체가 이미 토론과 논리 주장 중심으로 이루어져온 상태에서 바칼로레아란 고등학교 때의 시험과 계속성을 가지는 하나의 공식적인 국가 시험 정도로 인식된다. 요는 논술 고사의 공정성이나 제도적 보완 장치가 우선인 것이 아니라 논술식의 시험 제도가 교과 과정에 얼마나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의 문제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바칼로레아 제도의 공정성을 보장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1백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바칼로레아 제도의 전통과 프랑스 교육 과정의 질적 완성도다. 성문법이냐 불문법이냐가 민주주의 완성도의 기준이 될 수 없듯이 바칼로레아나 논술 시험의 성숙도의 기준이 제도적 장치에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최연구 지음 <빠리 이야기>(새물결)에서 인용.
가장 프랑스적인 철학 정신 질 들뢰즈의 생애와 사상
"프랑스의 유일한 철학 정신."
미셸 푸코는 그의 친구 질 들뢰즈를 그렇게 평가했다.
알튀세르, 푸코, 데리다, 라캉, 리오타르 등 굵직굵직한 석학들과 어깨를 견주며 현대 프랑스 철학사를 풍미하던 질 들뢰즈 교수가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오랜 투병 생활 끝에 70세의 나이로 96년 1월 4일 파리에서 세상을 떴다. 그 역시 프랑스 지식인의 섬찟한 전통인 자살을 자신의 최후로 선택했고, 니코스 풀란차스가 그랬듯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또 한 번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미래를 창조하고자 했던 철학자적 열정
1925년 1월 18일 파리에서 태어나 카르노 고등학교, 파리 소르본 대학 철학과를 거친 들뢰즈는 48년에 교수 자격시험을 통과했고, 몇 년간의 고교 교사 생활 후 57년에는 모교 소르본 대학 철학과 조교로서 강단에 섰다. 69년에 박사 학위 논문 <차이와 반복>을 발표했고 그 해 미셸 푸코의 뒤를 이어 파리 8대학(뱅센) 교수 생활을 시작하여 87년 정년 퇴직하기까지 꾸준히 명성을 쌓아간다.
자크 데리다, 피에르 부르디외나 미셸 푸코가 모두 명문 고등 사범학교 출신의 선택된 지식 엘리트인데 비해 질 들뢰즈는 평범한 소르본 대학 학위에 그치고 있고, 루이 알튀세르나 니코스 풀란차스가 프랑스 공산당의 이론가로서 열성적으로 활동했던 반면 그는 평범한 좌익 활동에 만족했다, 이렇다 내세울 만한 화려한 학력이나 경력은 없지만 들뢰즈를 프랑스 철학의 초고봉에 올려놓은 것은 다름아닌 그의 사상의 깊고 방대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래를 창조하고자 했던 그의 철학자적인 열정일 것이다.
굳이 불뉴하자면 반역의 철학자로 분류된다는 <르 몽드>지의 지적처럼 질 들뢰즈는 언제나 철학적 사조나 학파의 바깥을 맴돌았고, 철저히 자유인이고자 했다. 그에게 막상 어떤 딱지를 붙여놓으면 그는 이미 다른 쪽에서 비웃곤 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들뢰즈의 창조적 열정이 들뢰즈 철학의 원동력이라면 원동력일 것이다.
그 자신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은 철학자 들뢰즈의 삶과 사고의 편린을 보여준다.
"여행을 거의 하지 않았고, 공산당에 가입한 적도 없고, 현상학자인 적도 하이데거주의자였던 적도 없으며, 맑스를 포기하거나 68년 5월을 저버린 적도 없다"(문학 월간지 <마가진 리테레르> 1988년 9월호).
침체된 현대 철학이, 한편에서는 헤겔주의의 관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또 한편에서는 맑스주의의 틀에 박힌 교리만을 답습하고 있을 때, 들뢰즈는 "니체 이후 어떻게 철학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철학의 돌파구를 모색했다. 그는 미셸 푸코와 마찬가지로, 단지 철학을 학습하고 해석했던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철학을 창조하고자 시도했던 몇몇 안 되는 현대 철학자 중 하나이다.
들뢰즈는 프루스트, 칸트, 니체, 카프카, 루이스 캐롤 연구에 바친 60년대 초기 저작에서 말년의 성숙한 성찰 <철학이란 무엇인가>(91년, 가타리와 공저), <비평과 의료>(1993년)에 이르기까지 철학 뿐 아니라 문학, 미수르 영화ㅡ 예술 등에 관헤 생애 3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저작을 남겼다.
그의 저작은 프랑스 독자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왔다. 특히 영미권에서의 영향력은 심대하다. 그의 저작이 거의 빠짐없이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에서 광범하게 읽히고 있음은 물론이고, 90년대에 들어와서 그에 대한 관심은 더욱 증폭되어 콜롬비아 대학에서는 그의 일련의 저작을 연도별로 소개하는 <들뢰즈 읽기 입문서>라는 책까지 펴냈을 정도다.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현실적 삶에 주목
이성과 반역을 동일시했던 들뢰즈의 철학은 경험주의와 일원론에 입각해 있다. 그는 플라톤에서 헤겔에 이르며 철학의 근본 개념으로 자리잡아온 진리, 이성, 주체 따위의 개념을 철저히 폐기하고자 했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주체-객체의 틀을 답습하는 기존의 형이상학적 방법론이나 틀에 박힌 변증법이 아니라 움직임, 살아 있음, 욕망 등 현실의 삶 그 자체이다.
가장 소중한 지적 동반자는 69년 처음으로 만난 정신 분석학자 펠릭스 가타리이다. 사회 정치의 원동력으로서의 욕망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작 <번(反) 오이디푸스>(72)를 필두로 <카프카>(75), <리좀>(76), <천개의 고원>(80), <철학이란 무엇인가>(91)에 이르기까지 들뢰즈는 많은 중요작을 가타리와 공동으로 저술했다.
가타리와의 첫 공저 <반 오이티푸스>는 당시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 폭탄과 같은 작품인데, 그를 세계적 석학의 대열에 끼게 만든 결정적 저작이기도 하다. 이 책은 특히 68년 5월의 유렵 학생 운동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는 책으로 평가된다. 이 책에서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을 엄마-아빠-나라는 폐쇄된 삼각형에 갇힌 졸렬한 시나리오라고 무차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은 그가 정신분석학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욕망을 갇힌 공간 속의 결핍이 아니라 사회를 향한 긍정적 힘이자 창조적 의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들뢰즈의 저서로는 <니체와 철학>(인간사랑), <철학이란 무엇인가>(현대미학사), <앙띠오이디푸스>(민음사), <소수 문학을 위하여>(문학과지성사), <질 들뢰즈 대담>(솔) 등이 있다.
무엇보다도 들뢰즈는 푸코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반이성주의, 반헤겔주의자였다. 62년의 초기 저작 <니체와 철학>에서부터 그는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변증법과 헤겔주의의 망령을 쫓아버리고자 했다.
"헤겔과 니체 사이에 가능한 타협점은 있을 수 없다. 니체의 철학은 철저히 반변증법적이다." "변증법은 나쁜 의식과 상심의 이데올로기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변증법은 근본적으로 기독교적이다. 즉 새로운 방법으로 사고하고 느끼며 창조하는 데는 완전히 무능하다."
헤겔에 대한 독기 어린 야유와 조소를 퍼붓는 들뢰즈의 철학은 진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니체의 존재론적 입장에서부터 출발하여, 고정된 관념틀인 변증법을 '허무한 무능의 얼굴', '창조에 무능한 이데올로기'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의 비판적 시각은 철학의 영역을 넘어 예술의 분야에도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들뢰즈는 철학이건 예술이건 진리를 찾고자 하는 순수한 성찰이 그 사명이 될 수는 없으며, 중요한 것은 가치 평가나 실험 그리고 개념이나 감각 상태의 창조임을 거듭 갈파했다.
그는 일생 동안 우리의 삶이나 세계에 친근한 사고의 틀을 고안하고자 애썼다. 말년의 저작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다양한 철학적 시도를 마감하고 "철학이란 플라톤 식의 명상도, 데카르트 식의 성찰도, 하버마스 식의 커뮤니케이션도 아닌 개념의 생산이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르기까지 그의 철학의 창조는 부단히 실험되고 수정되면서 정교해졌다.
다른 철학자의 이론에 의거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와 자신의 독창적인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바로 철학이라는 그의 입장은 항상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자 했던 들뢰즈 철학의 바탕이 되어왔던 것이다. 지적으로 푸코에 근접했던 들뢰즈의 철학은 스피노자에서 니체에 이르는 철학 전통 계보의 연장선에 서 있으며, 이원론적인 모든 휴머니즘의 종말을 고하고 내재성의 철학의 도래를 선언하고자 한 일련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진지하게 연구했던 것은 스피노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에 대한 이해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나 역시 그를 이해 못하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다." 그의 스피노자에 대한 경외는 우리의 들뢰즈에 대한 경외에 그대로 적용된다. 그가 철학에 대한 대대적인 청소를 단행하고, 방대한 개념과 사색을 남겼지만, 그를 이해하기엔 아직 너무나 벅차고, 우리는 그를 이해하려고 시작조차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들뢰즈의 철학적 깊이를 누구보다도 먼저 이해했던 미셸 푸코의 예언처럼 과연 이 세기가 들뢰즈의 세기가 될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에서 새로운 정의에 이르기까지 철학의 흐름을 거세게 흔들어놓은 들뢰즈의 철학이 적어도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현대 철학사에 남긴 업적과 엄청난 영향력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최연구 지음 <빠리 이야기>(새물결)에서 인용.
(......)
프랑스에는 이름만 귀족인 가짜 귀족들 말고 현대판 진짜 귀족이 엄연히 존재한다. 대학과 대학원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고등 전문학교인 그랑제꼴(Grandes Ecoles) 출신들이 바로 그들이다. 옛날의 귀족을 대신한 새로운 세력은 부르주아가 아닌 현대판 엘리트 귀족들이다. 그랑제꼴은 고등 전문학교라는 명칭으로는 부족하고 일반 대학보다 상위의 고급 인력을 양성해내는 국립 고등 교육 기관이다. 고등 사범학교(Ecole Normale Superieure), 이공과대학(Ecole Polythechnique), 국립 행정대학교(E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조심해야 할 것은 학생이 한 해에 2만 프랑 이상의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패션학교 에스모드 같은 사립 그랑제꼴도 모두 그랑제꼴로 불린다는 점이다. 국립 그랑제꼴과는 현격한 차이를 갖고 있다.
그랑제꼴 중에서도 약어로 에나ENA라고 불리는 국립 행정대학교 출신의 엘리트들은 사실상 프랑스를 쥐고 흔든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그들은 프랑스 사회에서 막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에나르크Enarque라고 불리는 에나 출신 동문 가운데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 등 2명의 전, 현직 대통령이 자리한다. 알랭 쥐페에 이어 총리직을 이어받은 리오넬 조스팽 사회당수 등 두 사람도 에나 출신이고, 로랑 파비위스, 미셸 로카르 전 총리 등을 배출했다. 97년 당시 에르베 드 샤레트 외무장관, 자크 투봉 법무장관 등 현직 각료만도 8명이었다. 필립 스갱 하원의장을 비롯해 상하원을 통틀어 40여 명의 의원이 포진해 있다. 에르나크들은 졸업하자마자 정계와 관계 및 국영 기업체를 비롯한 재계에 들어가 나라 전체를 주무른다.
국영 프랑스 텔레콤의 미셸 봉 회장, AFP 통신의 리오넬 프롤리 회장, 푸조 자동차의 자크 칼베 회장, 에어프랑스의 크리스티앙 블랑 회장, 루이 뷔통의 장 드로메 회장 등 주요 기업 총수들만도 225명이나 된다. 이들 그룹 총수들은 회사를 서로번갈아 자리를 옮겨다니면서 고위직을 독점한다. '권력 가이드'라는 책의 96년판을 보면 프랑스를 움직이는 3,000명 인물의 사진, 약력 등이 실려 있는데, 에나 출신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쯤되면 에르나크들이 프랑스를 좌지우지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에나는 지난 45년 2차 대전의 전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샤를 드골 장군이 상처 투상이의 프랑스를 이끌어갈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교육 기관이다. 50년만에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했으니 드골의 전략은 적중한 셈이다. 에나에 들어가려면 파리의 앙리 카트르, 장송 드 사이이 같은 일류 고등학교(최근에는 신명문 고등학교가 등장해 일류 고등학교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를 나오지 않으면 상상도 할 수 없다. 겉으로는 프랑스가 평등 교육을 외치는 나라이지만 실제로는 일류 고등학교와 일류 대학이 존재하는 영재 교육의 나라다.
에나는 한 해에 100여 명 정도의 신입생을 뽑는다. 기존 공무원이나 외국 공무원 가운데서도 에나에서 연수를 할 수 있는 별도의 코스도 있다. 바칼로레아를 거쳐 2년 동안의 별도 교육을 받은 뒤 시험에 합격해야 하고 다른 국립 그랑제꼴을 졸업한 뒤에 에나에 입학하는 경우도 있다. 10개 시험 과목을 통과해 에나에 합격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입학하고나서는 27개월 동안의 공무원 준비 과정이 이들을 기다린다. 처음 일년 동안은 도청이나 공무원 공관 같은 행정 기관에서 현장 실습을 받고 난 뒤 시험을 치르는데 그 시험 또한 상당히 어렵고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한다.
예를 들면 '당신은 지금 터키 주재 프랑스 대사관의 차석(대사 바로 아래의 직급을 갖고 대사 대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외교관)이다. 대사가 방금 쿠르드족의 지도자와 면담을 마쳤는데 외무성에 보고할 전문을 작성하시오'라는 문제가 나온다. 또 '당신은 국가 예산국의 공무원이다. 동산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려고 하는데 법안과 필요 조치를 쓰시오'라는 식이다. 국제 정치, 법 조문, 세금 문제 등 국가 전반에 대한 지식과 판단력이 없으면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들이다. 이런 시험들은 이들을 언제 어느 자리에 갖다 놔도 일처리를 할 수 있는 전방위 고급 공무원으로 만든다. 현장 실습을 마치면 법학, 경제학, 국제 문제, 사회 문제 등에 대해 14개월 동안 공부하는 코스가 있으먀, 2개 외국어 정도는 유창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에나에 입학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지만 입학만 하면 그날부터 탄탄대로의 인생이 기다린다. 에나 합격은 우리로 따지자면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 3대 고시를 동시에 통과한 것에 해당한다. 한 달에 8,000프랑 정도의 월급이 나온다. 여기에다 처음 8개월 동안은 매달 2,500프랑이 추가된다. 프랑스 근로자의 평균 임금이 1만 프랑을 갓 넘는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20대 후반의 젊은이들이 받는 월급치고는 엄청난 것이다. 졸업만 하고 나면 27세의 나이에도 대기업의 임원부터 사회 생활을 시작하거나 고위직 공무원으로 출세할 수 있는 현대판 귀족 행세를 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의 하버드나 영국의 옥스퍼드 같은 세계적인 대학 졸업생들도 부러워할 만한 제도다. 에나르크들이 나라를 장악하자 비 에나 출신들은 '에나 망국론'을 펴고 있다. 비 에나 출신들은 에나 출신들이 프랑스를 다 말아먹고 있으며 모든 사회 문제들은 에나 출신들이 행정을 잘못하기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에나르크 가운데서도 수재만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경제 재무성의 회계 감독관이다. 직업 관료인 테크노크라트 중에서도 회계 감독관의 자리는 단연 '꽃 중의 꽃'이다. 프랑스는 회계 감독관이 지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들은 고급 주택가에 모여 살면서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준다. 긴밀한 유대 관계로 '엘리트 마피아'를 형성하고 있다. 정치인들마저 회계 감독관들을 비난하고 공격하지만 이들은 요지부동이다. 시라크 대통령은 95년 대선이 끝난 뒤 선거전에서 리오넬 조스팽 사회당 후보보다는 같은 우파 내의 에두아르 발라뒤르 전 총리의 싸움이 더 어려웠다고 술회했다. 프랑스 국민들이 미테랑의 사회당에 이미 식상해 있고 상대적으로 약한 조스팽에 대해서는 자신감도 있었을 테지만 실제 가장 큰 적은 발라뒤르를 지지하는 경제 재무성 관리 출신의 회계 감독관들이었다는 것이다. 시라크가 당선된 지 한 달만에 경제 재무성 관리들을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으로 불러들여 은해 부실 경영의 책임을 물으면서 관리들을 혼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관리 길들이기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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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 <프랑스인들은 배꼽도 잘났다>(자작나무>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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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대학 입학 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의 96년 합격률이 사상 최고인 76%를 기록했다고 떠들썩했다. 50여 만 명의 학생들이 바칼로레아에 합격했던 지난 95년의 75.2%에 비해 0.8%가 늘어난 합격률이었다. 바칼로레아 합격률은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프랑스 언론은 '교육 평등과 기회의 확대'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바칼로레아 합격률의 상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97년 5월 총선에서 총리가 된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이 90년 교육부 장관 당시 만들었던 '2000년 대학 교육 계획'에 따르면 100% 합격률이 지상 목표다. 국민 모두가 교육을 받을 권리를 향유하도록 한다는 이상향이다.
여기에 바칼로레아 합격률의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있다. 바칼로레아 합격률의 점진적인 향상은 학생의 질을 저하시켰다. 자격 미달의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했고, 놀면서 대학을 졸업했다. 기업들은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은 데다 자질이 떨어지고 경쟁력이 없는 대학 졸업자 채용을 꺼렸다.
프랑스의 입시철은 5월. 새 학년이 9월부터 시작되는 학제상의 차이 탓이다. 하지만 입시 전쟁도, 과외 전쟁도, 눈치 전쟁도 찾아볼 수 없다. 바칼로레아 합격은 사회에 진출하면서 운전 면허증과 함께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격증이다. 7월 초가 되면 시험 결과가 나온다. 20점 만점에 10점 이상으로 합격만 하면 대학 입학 자격이 주어딘다. 어느 대학에든 지원할 수 있고 미니텔이라는 컴퓨터망을 통해 입학 신청을 하면 그만이다. '전쟁' 한번 치르지 않고 대학생이 될 수 있다. 논술 문제를 보자. 철학 시험은 '비합리성이란 항상 모순인가', '사르트르의 자유에 대한 한 구절을 논하라'는 식의 문제가 나온다. 그 중 1개를 택해 무려 4시간 동안 말을 풀어나가야 하는데 벼락 공부로는 될 수가 없으며 아는 것도 많아야 하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1주일 뒤에는 오전 우호 각 4시간씩 하루 2과목씩의 시험을 3일 동안에 걸쳐서 봐야 한다. 수학 물리 역사 등의 과목을 대상으로 사고와 표현력을 발휘한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어 깊이있는 사고를 쌓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또 폭넓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해야 한다. 프랑스 시험 제도는 가능성 있는 학생에게는 철저히 기회를 준다는 데 특징이 있다. 바칼로레아도 8-10점을 받은 학생 등에게 3차례의 구제 기회가 남아 있다. 대학에서도 중간 고사, 기말 고사에 이어 커트라인에 근접한 학생들에게는 구두 시험의 기회를 준다. 이런 기회는 억울한 경우를 없앤다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만 실제 겪는 학생들은 공부에 지친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다.
95년 가을, 대학생들이 거리로 뛰쳐 나왔다. 파업과 시위가 워낙 많은 나라여서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인다고 해도 별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그 해의 시위는 특이했다. '돈을 달라, 그리고 교수를 달라!'며 루앙 대학에서 시작된 대학생들의 절규는 툴루즈, 니스 몽플리에, 메츠, 오를레앙 등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시위의 물결은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파리의 대학에까지 퍼져 전국 대학생들의 봉기로 이어졌다. '68사태'로 드골 대통령이 하야했고 기성 세대의 붕괴를 가져왔던 경험이 있는 프랑스인들이 '제2의 68사태'를 우려할 정도로 시위는 심각했다.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이유는 강의실과 교수가 부족해 수백 명이 커다란 강의실에 한꺼번에 모여 앉아 수업을 들어야만 했다는 데 있다. 강의를 들으려 해도 자리가 부족해 복도에 선 채로 모기만한 교수 목소리를 노트에 옮겨 적어야 했다.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교수의 강의 목소리가 묻혀버릴 정도였다. 실험 실습이 생명인 이공계 대학들은 기자재와 재료가 없어 실험을 하지 못한다. 대학이 수용할 수 있는 정원보다 3배나 많은 학생들이 바글거리고 있으며 낭테르 대학 같은 경우는 화재가 나도 대책이 없을 정도로 시설이 낙후되어 있다.
이는 프랑스 대학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현상이다. 학생들은 이런 대학을 아프리카의 후진국에 빗대 '제3세대의 대학'이라고 비꼰다. 바칼로레아 합격률 30%였던 30년 전 그대로다. 수적으로 팽창한 대학생들을 대학이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 시위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프랑수아 바이루 당시 교육부 장관이 재정난이 심한 대학에 2억 프랑의 긴급 재정 지원을 약속하고서야 시위는 잠잠해졌다. 하지만 프랑스의 제정은 더 이상 대학의 무료 교육을 감당하기 힘든 상태다. 95년 전체 교육비는 5,360억 프랑이고 절반 정도인 2,859억 프랑이 교수 및 교직원에 대한 인건비다. 교육 기관의 직, 간접 채용 인원 100만 명은 구 소련 붕괴 이후 세계 최대의 교육 규모다. 대학의 시설 투자비는 고작 122억 프랑으로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 220만 명의 대학생 한 명당 연간 5만 2,500프랑의 교육비를 국가가 부담하고, 중고등학생은 한 명당 3만 7,500프랑, 초등학생 2만 2,300프랑, 유치원생 2만 1,500프랑의 비용이 들어간다. 우리나라의 사교육비가 8조원을 넘어섰다고 하지만 프랑스는 엄청난 공교육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학교 등록금은 모두 합해 연간 700프랑이니 공짜나 다름없다. 16만원의 등록금마저 부담이 된다고 해서 5분의 1인 40만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는 천국이 츠랑스다.
재정 지원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되자 대학 교육 평등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극우 대학으로 유명한 파리 2대학의 필립 아르당 총장은 "프랑스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대중적인 대학은 교육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정신에서 보면 좋은 개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대학의 위기를 타개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등록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현실론을 폈다. 당시 거론됐던 인상폭은 현재보다 10배는 많은 등록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학부모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자유ㅡ 평등, 박애'의 나라 프랑스에서 이런 주장은 제대로 확산되지도 못하고 주저앉았다. 반대 이유는 국가가 예산과 대학 교육 향상 계획을 만들어야지 등록금을 인상해 학부모들에게 전가하려는 발상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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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 <프랑스인들은 배꼽도 잘났다>(자작나무)에서 인용.
인터넷, 학술지 인용 빈도수를 통해 본 학문의 판세
맥도날드와 코카콜라, 할리우드 영화로 요약되는 미국 문화가 세계를 잠식해가고 있는 가운데, 그래도 문화 과학의 보루는 전통 국가 프랑스라는 이색 기사가 발표돼 눈길을 끌고 있다.
프랑스에서 최대의 판매 부수를 자랑하는 시사 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는 "문화 : 세계가 부러워하는 프랑스인"이라는 제곰의 특집 기사(1996년 3월 21일자)를 통해 날로 영향력을 더해가는 듯한 미국에 대한 프랑스 학문의 비교 우위를 증명하는 객관적 자료를 제시해 원래 오만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인의 콧대를 한층 더 높여주었다.
세계 지성사 이끄는 프랑스 석학
이 기사의 첫머리는 최근 프랑스에서도 붐을 일으키기 시작한 인터넷에 대한 이야기에 할애되어 있다. 인터넷이 단순한 통신의 장이 아니라 이제는 학문적인 토론의 장이 될 수도 있음을 지적하면서, 최근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토론 포럼'을 소개하고 있다. 이 포럼은 특정한 학자나 주제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이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이용해 토론하고 논쟁하는 장이다.
미국 첨단 테크롤로지의 상징인 인터넷 포럼에서 가장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학자들은 단연 프랑스 학자라는 점들이 흥미롭다. 프랑스 현대 철학을 대표하는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사르트르, 보드리아르, 리오타르 등은 모두가 영향력 있는 포럼을 형성하고 있다. 각 포럼의 참가자들은 물론 대부분이 학자, 연구자, 대학 교수들인데, 그 가입자의 수는 곧 그 포럼의 중요성을 판별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누구의 포럼이 가장 많은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을까? 이 질문은 곧 누가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학자인가와 같은 내용의 질문이 될 수 있다. 누구일까? 프랑스의 사르트르, 미국의 존 롤스, 독일의 하버마스?
하지만 그 결과는 독자들의 추측에서 다소 빗나갈 것이다. 놀랍게도 가장 많은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포럼은 프랑스 최고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다. 부르디외의 포럼은 무려 529명의 가입자로 유일하게 500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응 포럼이다. 이 포럼은 모로코계 핀란드인 사회학자이며 현재 핀란드 조엔수우 대학의 교수인 마무드 사부르에 의해 1995년에서야 만들어졌지만 무서운 속도로 그 영향력을 더해가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학자 하버마스의 포럼이 488명의 회원으로 영향력 있는 포럼인 것을 제외하면, 가입자가 500명을 육박하는 포럼은 푸코, 사르트르, 데리다 등 한결같이 프랑스 학자들이다. 이들 포럼은 각각 492명, 478명, 461명의 가입자를 기록해 현대 사상사에서 프랑스인들의 비중을 새삼 확인해주고 있다. 더군다나 이 포럼에 참가하는 토론자들은 프랑스인들보다는 미국인, 캐나다인, 오스트레일리아인, 뉴질랜드인 등이 훨씬 많다. 다시 말하면 앵글로 색슨의 학계에서도 정작 최고의 관심의 대상은 프랑스의 사상이라는 이야기다.
인터넷에서 인기를 누리는 것이 프랑스 학자들이지만 정작 토론은 영어로 진행되고 있다. 한편 이 인터넷이라는 매체에서의 통계치가 어느 정도로 현실을 반영할지에 의문을 가질 독자가 있을 법도 한데, 컴퓨터의 보급 정도에 따라 나라별로 이용도의 차이가 있고 실제로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연구자들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을 의식했음인지 이번에는 좀 다른 종류의, 하지만 좀더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이 자료 역시 미국 자료다, 예의 자료는 바로 매년 미국의 유력 연구소 '과학적 정보를 위한 연구소'에서 발간되는 <인용 총람>이다.
이 연구소는 전세계에서 발간되는 거의 모든 학술지를 검토하여 어떤 학자 또는 그 저서의 문구가 얼마나 인용되고 잇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가장 빈번하게 인용된다는 것은 연구자에게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주거나 아니면 논쟁거리를 제공해준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이 방대한 작업의 결과는 곧 어떤 학자가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인가를 시사하는 객관적 자료가 되므로 학계의 주목을 끌 만하다.
특히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는 인류학, 사회학, 고고학, 경제학, 법학, 교육학, 철학, 정치학, 역사학, 심리학 등을 망라하고 있는 '사회 과학 분야'다. 편의상 '사회 과학'이라 분류하고 있지만 사실상 거의 모든 문화 과학을 총망라하고 있으므로 학계의 관심은 더더욱 비상하다.
가장 빈번히 인용되는 학자들의 명단에서 프랑스 학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1994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인용된 학자는 1,085회 인용횟수를 기록한 프랑스 현대 철학의 거장 미셸 푸코다. 그 다음으로 많이 인용된 사람은 독일의 하버마스(918회)와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664회)이다. 하지만 그 뒤를 쫓고 있는 학자는 피에르 부르디외(624회), 자크 데리다(293회), 보드리야르(232회), 레비 스트로스(186회), 리오타르(183회), 리쾨르(177회), 바르트(154회), 라캉(115회), 사르트르(90회) 등 대부분 프랑스 학자들이다.
미셸 푸코, 금세기 최고의 석학
1995년의 경우 8월까지의 통계치를 제시하고 있는데, 피에르 부르디외가 부각되고 있는 점을 제외한다면 그 판세에는 변함이 없다. 95년 8월 현재까지 가장 많이 인용된 사람은 여전히 미셸 푸코(646회)이고 피에르 부르디외가 532회 인용을 기록, 그 뒤를 바짝 따르고 있다. 하버마스는 527회, 존 롤스는 362회, 자크 데리다는 177회를 각각 기록했다.
'사회 과학'이 아닌 '예술과 인문학' 분야의 통계치에서도 그 주역들은 비슷하게 나타났는데, 프랑스 학자들은 오히려 더 높은 수치를 보여주었다. 예술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람은 이번에도 미셸 푸코로 나타나 과연 금세기 최고의 석학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은 하버마스가 아니라 바르트, 데리다, 레비 스트로스 등 프랑스 학자들이었다. 예술 분야에서 프랑스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대목이다.
한편 이 연구소는 1976년에서 1983년까지 발행된 예술 전문 학술지 중 가장 많이 인용된 학술지 50가지를 발표했는데, 이 중 25개가 영어, 13개가 프랑스어, 10개가 독일어, 2개가 러시아어로 된 학술지였다. 국제어로서 영어의 위력을 보여주는 대목이지만 영어권 인구가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사용하는 인구에 비해 월등히 많고 또한 전세계에서 발간되는 학술지의 80%가 영어로 발간된다는 사실에 비추어본다면 그 결과는 다른 각도에서 해석될 수도 있겠다.
세계 최대 강국 미국이 프랑스이 경제에 타격을 줄 수도 있고 거대 자본의 할리우드 영화가 파리의 거리에서 흥행에 성공할 수는 있어도, 그들이 프랑스인의 오만 앞에 자존심이 꺾여야 하는 것은 바로 세계 지성사를 풍미하고 있는 프랑스인의 사상 앞에서다. 문화적 전통과 창조적인 사상은 거대 자본으로도 살 수 없는 그 무엇인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강조했던 경제적 자본이 아니라 문화 자본이라고 역설하고 있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이론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의 사싱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마당에도 소심한(?) 프랑스인들은 미국 문화의 위협에 맞서 프랑스어 사용 의무화 법안을 통과시켰고, 샹송 쿼터제 법안을 발효시키는 등 호들갑을 떨고 있다. 엄연히 프랑스어 단어가 있는데도 고의로 영어를 사용하는 자는 처벌된다. 상업용 간판, 학술 논문에서도 이 법안은 적용된다. 라디오 방송에서는 프랑스 샹송을 40% 이상 내보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열정을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다.
파리에서 살다 보면, 지식인이건 언론인이건 더 외국어를 섞어 쓰려 하고, 거리의간판은 외국어 홍수를 이루고 있는 한국의 현실, 더 나아가 맥도날드와 버거킹의 햄버거를 먹으면서 라디오에 서 나오는 팝송이나 록 음악에 흥겨워하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정작 이런 조치가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은 억지일까? 프랑스인들에 대한 부러움보다는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이 앞선다.
-최연구 지음 <빠리 이야기>(새물결)에서 인용.
프랑스 카페에서 철학이
거리에 의자를 내놓은 프랑스풍 카페는 파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특히 인상적인 거리 풍경 중의 하나이다. 비만 오지 않는다면 날씨야 어쨌건 사람들은 밖에 내놓은 카페의 의자에 앉아 카페오레를 마시며 혼자 신문이나 책을 보기도 하고 몇몇이서 수다를 떨거나 프랑스인 특유의 손짓을 섞어가며 격론을 벌이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카페를 비스트로라고 부르는데, 그 어원이 재미있다. 비스트로란 러시아말로 '빨리 빨리'라는 뜻이다. 1815년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 파리에 입성한 연합군 중 성격이 급한 러시아 군인들이 카페에 올려와 목이 말라 '빨리 빨리' 마실 것을 달라고 '비스트로, 비스트로!'라고 외친 것이 오늘날 카페의 어원이다.
카페는 프랑스 문화의 3대 상징 중 하나
어쨌건 카페는 프랑스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아침에는 크루아상에 커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저녁에는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는 만남과 사교의 공간이지만 프랑스에서는 문학, 예술, 철학의 공간으로서의 카페이다.
카페라면 한국식으로는 커피샾이나 다방 정도가 될 텐데 난데없이 무슨 철학이니 예술이냐고 의아해할지도 모르겠지만, 프랑스의 카페는 분명 특별한 곳이다. 오죽했으면 언젠가 프랑스 문화부는 프랑스 문화의 3대 상징으로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요리와 함께 비스트로를 포함시켰겠는가?
1907년 경 금세기 최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가 만나면서 큐비즘이라는 미술의 장르를 탕시한 곳도 바로 파리 시내 '생 제르맹 데 프레'라는 지역의 카페 '되 마고'에서다. 1939년에는 바로 이웃의 카페 '카페 드 플로르'가 예술가나 문학가, 지식인들의 만남의 장소가 된다.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는 매일 저녁 이 카페에 와서 글도 쓰고 토론도 했다고 한다. 전후, 저항 문학이 탄생한 곳도 바로 '생 제르맹 데 프레' 지역의 바로 이런 카페들에서임은 물론이다.
지식인과 문화의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프랑스의 카페에서 최근 '철학 카페'라는 새로운 경향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철학과 문학, 예술을 꽃피운 프랑스 카페의 전통이 되살아나고 있다. 카페 필로 또는 비스트로 필로라고 불리는 이런 흐름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철학에 관심을 가진 대중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철학자나 대학 강사의 주관하에 어떤 철학적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대중 철학 세미나 같은 것이다.
처음 철학 카페라는 발상이 태동한 것은 1992년 철학자 마르크 소테에 의해서였다. 철학 교수인 그는 언제부터인가 매주 일요일이면 친구들과 바스티유 광장 한쪽의 카페 '카페 데 파르/에 모여 인생이며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관심 있는 친구들이 하누둘씩 늘어가면서 이 모임은 철학 토론회로 발전했고, 일요일 아침이면 이 카페는 소테 씨의 철학 모임으로 성황을 이루게 된다. 이 모임이 철학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면서 철학 카페라는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
비스트로 필로에서 삶과 철학을 논한다
'카페 데 파르'의 일요 철학 토론회는 차츰 소문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어느 날 바스티유의 명물이 되어버렸다. 입구 간판 아래 '최초의 비스트로 필로'라는 표지가 붙어 있는 '카페 데 파르'는 일요일 아침이 되면 발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만큼 프랑스인들의 철학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다.
한 카페에서 더 이상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대학가를 중심으로 철학 카페가 속속 생겨나게 되었고 지방으로까지 퍼져나갔다. 현재 철학 카페는 파리에만도 약 20군데나 되고 니스, 스트라스부르, 마르세유, 투르, 리옹 등 전국적으로 50-6-군데가 넘는다. 이에 힘입어 정기화된 모임을 좀더 생산적으로 확산하고자 만들어진 단체가 '필로 협회'인데, 현재 매월 회지도 발간하고 전국의 철학 카페 모임들을 주관하고 있다.
같은 철학 카페라도 그 운영 방식이나 분위기는 카페마다 다르다. 가령 대학가인 라탱 지구(파리 제5구)의 타라주트 식당에서 열리는 모임의 성격은 매우 전문적이다. 이 모임은 한 1년 반 전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반부터 열리고 있는데, 모임이 있을 때는 그 때마다 식당을 치워 세미나실처럼 정리하고 발제와 강독, 자유 토론의 순으로 진행한다.소르본 대학의 철학 교수가 사회도 보고 토론을 총괄하는데, 그 분위기는 철학자들의 학술 토론회를 방불케할 만큼 사뭇 진지하다.
똑같은 시간, 인근의 분위기 있는 '루아얄 쥐시외 카페'에서는 지하를 빌려 철학 토론회가 열리는데, 이곳에서도 전문성과 진지함이 요구되기는 마찬가지다. 1년치의 토론 주제와 일정표가 이미 정해져 있고, 수시로 강독 자료 복사물과 참고 도서 목록을 나누어주기도 한다. 성실한 참여를 위해 출석부도 돌리고 있는데, 반면 철학 카페의 원조격인 '카페 데 파르'의 토론 모임은 훨씬 자유분방하고 분위기도 부드럽고 대중적이다.
주제도 사랑이나 신에 대한 믿음 등등 비교적 생활적인 것들이며 토론도 대화나 즉흥적인 자유 토론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주제나 토론 수준은 카페마다 차아기 나므로 사람들은 여기저기 한 번씩 참여해본 후 자기 수준에 맞는 모임을 선택한다.
각 철학 카페의 책임자들은 필로 협회를 매개로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매번 토론한 주제와 내용은 예의 '필로 협회'로 모이고 이 중 흥미로운 내용은 이 협회의 회지 <필로>에 실리기도 한다.
그간 토론된 주제를 살펴보면 '프랑스는 망명의 땅인가' 따위의 정치적,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모호함과 불합리함의 관계' 등 지극히 철학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회지 <필로>의 주제를 훑어보면 프랑스 철학의 최신 경향과 대중적 관심사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철학 카페'는 그간 몇 년 새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 필로 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철학자 파스칼 아르디 씨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철학 카페의 성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미 볼테르 시대부터 프랑스이 카페들은 사회에서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만남과 의견 교환의 장소였죠. 한편 프랑스는 고등학교에서 철학이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학교에서의 철학 교육은 너무 교과서적이라 불충분하지만, 적어도 철학이 그렇게 추상적인 것이 아님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 하에서 철학 카페는 자연스럽게 자신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훌륭한 계기가 되는 거지요."
어느새 철학 카페는 프랑스인들의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철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부담없이 참석할 수 있다. 고교생과 은퇴한 노인이 세대차를 뛰어넘어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생생하게 접할 수도 있다. 평소에는 가까이할 수 없는 대학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대중의 삶 속에 뿌리내리는 철학
"비스트로 필로는 하나의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는 근본적인 운동입니다. 이런 토론의 기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당자으이 상황에 조급해하지 않고 깊은 번민을 표현합니다. 불합리한 것들에 맞서 철학은 이제 진정한 생활의 방책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철학 카페의 창시자 마르크 소테 씨는 삶 속에서의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철학 카페를 근원적인 문화 운동으로 결론짓는다. 철학이 딱딱하고 지루한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삶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소피의 세계>, <큰 미덕의 작은 개론>, <말의 귀에 중얼대는 사람> 등의 철학 소설이나 철학 에세이류가 폭발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는 점도 철학의 대중화 경향과 맥을 같이한다.
철학이 삶 속에 뿌리를 내릴수록 인간의 사고가 윤택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면 프랑스인들은 분명 문화 민족이란 격찬을 들을 만하다. 아마도 프랑스인의 문화적 우수성은 전통의 풍요함보다는 오히려 풀륭한 전통을 이어오면서도 무언가를 부단히 만들어내려는 창조적 발상에 있는 것 같다.
-최연구 지음 <빠리 이야기>(새물결)
Pierre BOURDIEU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유치원생들의 바람만이 아니다. 그래서 교수들도 텔레비전에 나와 인터뷰어, 사회자, 토론자도 되고, 심지어 개그맨이 된다. 나는 방송에서 단편적 지식으로 대중을 현혹하거나 자신들의 전공과 무관한 분야에서 전문가인 척하면서 대중을 기만하는 그들을 '텔레페서'라고 비난한 적이 있다.
당대 최고의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위와는 다른 맥락에서 텔레비전에 나타났다. 그는 텔레비전 강의를 담은 '텔레비전에 대하여>(동문선 출간)에서 텔레비전의 보이지 않는 메카니즘을 폭로하여 학자 언론인 등 지식인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그가 저널리즘의 세계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이유는 저널리즘이 지식인과 학문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민주주의 발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기 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과 신문은 정치 논리와 경제 논리에 종속되는 그 자신의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특히 텔레비전은 정보의 독점, 왜곡, 조종을 통하여 대중 선동적이거나 탈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민주 시민 사회를 억압하는 상징적 폭력의 기제가 됐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폭력 기제의 사용에 있어서 기자, 학자, 지식인들이 전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패스트푸드와 같은 지식을 갖고 스튜디오에 자주 나타나는 '패스트 싱커' 지식인, 사회 비판 의식을 결여한 채 지배 질서의 통념만을 전달하는 기능적 지식인들이 그 전형이다. 사실상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조차 출연자들의 구성이나 진행 방식을 보면 무늬만 민주적인, 가짜 토론이다. 한편 부르디외는 사실 왜곡의 동질화, 획일화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지상주의를 시장 논리 지배의 정당한 결과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세계화 운운하는 신자유주의 세력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신자유주의 비판의 최전방에 서서 전세계 비판적 지식인의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근래에 그는 상아탑에만 안주하지 않고 거리에 나가 실업자, 파업 노동자들의 편에 서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판적 지식인의 또 다른 모습은 <촘스키, 끝없는 도전>(그린비 출간)에서 볼 수 있다. 이 시대 최고의 미국 언어학자 촘스키는 인권 유린과 세계 분쟁에 있어서 지식인과 국가의 야합을 비판한다. 그는 반정부적 정적으로 몰려 한때 수감되기도 했지만 정파에 휩쓸리지 않고 올곧은 비판의 목소리를 낸 용기있는 지식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지식인은 어떠한가. 소신있게 정치적 발언을 하는 비판적 지식인들이 있는가? 얼마 전 정치판에서 쫓겨난 학자, 자장면 배달원 같은 신지식인 상에 밀리는 구지식인들(?). 모두 별 말이 없다. 유럽의 지성 부르디외와 미국의 촘스키 같은 비판적 지식인의 상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준비하는 우리 사회화 어울리지 않는 구지식인 상일까?
-한택수의 종횡무진 책읽기(조선일보 1999년 4월 13일)
카페와 지성이라는 두 단어의 결합이 연상시키는 인물로는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1905-1980)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그의 지적 작업은 상당 부분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사르트르는 그의 동반자 시몬 보부아르와 함께 2차 대전 종결 직후 월간 <현대>를 창간했다. 그는 <현대>의 편집 회의를 파리 앙시엥 코메디 거리에 있는 철학 카페 르 프로코프에서 열곤 했다. 그 회의에는 메를로 퐁티 같은 좌파 지식인 뿐만 아니라 레몽 아롱, 알베르 카뮈 등 우파 지성들도 참여했다.
사르트르가 르 프로코프를 편집 회의 장소로 선택한 것은 이 카페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르 프로코프는 시칠리아에서 건너온 이민자 프란체스코 프로코피오가 1686년 문을 연 프랑스 최초의 카페였다. 르 프로코프는 100년 뒤 프랑스 대혁명 때 당통이나 로베스피에르 같은 공화주의자들의 집합처였다. 이들은 여기서 자유, 평등, 공화국 등 정치적 이름이 붙은 술을 마시며 혁명의 진로를 설계했다.그 시절 급진 공화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주창했던 성평등 이념에 따라 신사/숙녀로 쓰인 화장실 푯말을 지우고 남성 니민(시투아옝)/여성시민(시투아옌) 으로 다시 썼는데, 이 표시는 20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남아 있다.
사르트르가 카페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지성을 연마했지만 이른바 카페 소셜리스트는 아니었다. 그는 68년 프랑스 학생 혁명을 비롯해 정치 투쟁의 현장에 어김없이 참석해 진보를 위한 싸움에 앞장섰다.
파리의 카페들이 지성을 풀무질하던 최전성기는 1,2차 세계대전 사이였다. 이 시기 파리에 상주하던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헨리 밀러 등 미국 문인들은 생 제르맹 데 프레 거리의 되 마고 카페나 몽파르나스의 라 로통드 카페를 드나들며 초현실주의 예술가나 철학자들과 열띤 논쟁을 벌이곤 했다.
-고명섭 기자, 1998년 11월 12일, 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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