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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즈 코헛
자기심리학 이야기(5)
자기의 결핍(deficit): 자기애성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자기구조의 발달결핍으로 인한 자기의 결함(defect)
앞서 논의되었던 응집적 자기의 정상적인 자기애적 발달에 있어서 자기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 구조적 결핍이 생기면 자기는 그 발달과정에서 결함을 가지게 된다. 즉 자기의 결핍이란 정확히 말해서 자기구조의 결핍으로 인한 자기의 결함을 뜻한다. 자기가 발달되는 과정에서 만일 부모의 공감적 보살핌의 지속적이고도 과도한 실패로 인해 유아가 최적의 발달조건을 가지지 못하면 심각한 자기애적 외상(narcissistic trauma)을 경험하게 되고, 그 결과 유아의 과대적 자기와 이상화된 부모원상은 그것들이 건강하게 잘 발달될 기회를 잃게 된다. 이것은 대개 자기대상의 공감적 기능의 결여로 인한 것인데, 주로 부모 혹은 돌보는 이의 공감적이지 않은 성품 탓이거나 혹은 그들만의 해결되지 않은 정신적 외상(특별히 자기애적 상처)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가령 만일 거울 자기대상이 스스로의 원초적 과대성(archaic grandiosity)에 고착되어있다면, 다시 말해서 거울 자기대상의 역할을 하는 이가 자신의 어린 시절 잘 발달되지 못한 과대적 자기의 자기애적 상처를 가지고 있다면, 그 자기대상은 유아의 자기애적 욕구를 충분하고도 적절하게 반영해 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면 유아의 과대적, 과시적인 자기애적 욕구는 심각하게 좌절되고 그 미숙한 과대적 욕구들은 현실경험을 통해 점차적으로 포기되거나 수정되지 않은 채로 억압되어 변형적 내면화를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1) 따라서 유아의 과대적 자기는 건강한 포부와 현실적인 자존감을 추구하는 성숙한 자기애로 발달되지 못한 채 어느 지점에서 자기애적 발달이 멈추어 버린 상태가 되고 만다.
또한 만일 유아가 갑자기 이상화 자기대상을 상실하거나 이상화 자기대상으로부터 외상적인 실망을 경험하게 되면 이상화된 부모원상 역시 붕괴되고 이상화 경험이 박탈되어 최적의 내면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이상화된 부모원상은 그것에 대한 현실적 한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리게 되는데, 즉 현실의 경험을 통해 점차적으로 변형되지 않고 그대로 억압되거나 환상 속에서 그 이상화 원상은 계속 유지된다.2) 따라서 유아의 이상화된 부모원상은 건강한 이상을 추구하고 스스로 긴장을 조절할 수 있는 성숙한 자기애로 변형되기도 전에 초기의 이상화 원상에 지속해서 의존하려는 상태로 그 발달이 정지하게 된다.
물론 코헛의 자기발달의 보상구조에 의하면 과대적 자기나 이상화된 부모원상의 발달에 있어서 그 어느 한쪽에 일차적 결함이 생기면 다른 한쪽의 발달의 강화를 통해서 그 결함을 보상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보상적 시도마저 다른 한쪽의 자기대상의 공감적 반응의 실패로 인해서 성공하지 못하게 되면, 그래서 결국 자기가 완전한 구조로 잘 구축되기도 전에 자기구조의 두 영역 모두에 발달적 결함이 생기면, 유아의 자기애적 욕구는 그것이 표현되기 보다는 그것에 대한 방어로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유아의 완전한 자기 발달은 심각하게 지장을 받게 되고 유아는 원초적 자기애에 고착된다. 결국 이러한 발달의 장애는 유아가 경험했던 자기대상의 기능들이 유아가 성장하면서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자기구조로 점차 변형되는 내재화 과정에 심각한 결핍을 가져온다. 이러한 자기구조의 결핍 안에서 자기는 자기의 결함, 즉 자기애적 상처를 가지게 되며 이는 결과적으로 자기 병리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과대적 자기가 건강하게 발달할 기회를 잃게 되면 대체로 자신의 신체를 건강을 지나치게 걱정하게 되는 건강염려증(hypochondria)이 생기거나 자기에게 몰두하는 자기의식이 과도해지고 수치심과 함께 당황감 등이 강화된다. 또한 표현되지 못한 과대적 자기에 대한 비현실적인 환상에 사로잡히게 되어 삶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허무함과 좌절, 낮은 자존감을 경험하게 된다.3) 이처럼 과대적 자기의 발달에 장애가 생기게 되어 그 자기애적 욕구가 표현되지 못하고 좌절되면, 과대적 자기는 부정되거나 억압되어 현실적 자기와 통합되지 않은 채 남아있게 된다. 코헛에 의하면 이것은 부정과 억압이라는 방어기제에 의해서 과대적 자기가 두 가지로 분리 혹은 분열됨을 말한다.
즉 과대적 자기가 방어적으로 부정되면 과대적 자기의 거만하고 과시적인 부분들이 현실적 자기로부터 분리되어 공존하게 된다. 이것이 코헛이 말하는 수직적 분리(vertical split)이다. 현실경험을 통해 수정되지 않은 과대적 자기는 수직적 분리에 의해 현실적인 자기로부터 차단되어 있으나 의식 속에는 남아 있어, 그 증세는 일관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거나 허황되어 보이고 허풍을 떨며 지나치게 독단적으로 과대적인 주장을 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 때 실제 자신이 느끼는 현실적 자기는 무기력감이나 허무감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과대적 자기가 수평적 분리(horizontal split)를 통해서 방어적으로 억압되면 줄어든 자신감, 막연한 우울감, 의욕상실, 주도성 결여와 같은 전반적인 자기애적 결핍증상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수직적 분리와 수평적 분리를 통해서 부정되거나 억압된 과대적 자기의 자기애적 욕구는 결국 낮은 자존감이나 수치심, 혹은 건강염려증과 함께 막연한 무의식적 우울증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4)
이상화된 부모원상이 잘 발달할 기회를 놓치게 되면 유아는 원초적 자기대상에 고착된 채 평생 자기의 자기대상을 갈망하고 추구하면서 그를 대체할 만한 다른 대상들에 의존하게 된다. 이것은 사실 대상자체에 대한 갈망과 의존이라기보다는 그 대상의 기능을 통하여 유아기에 잘 구축하지 못했던 결핍된 자기구조 안에서 자기의 결함을 메우려는 시도이다. 유아기에 이상화된 부모원상과 관련한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은 부모 혹은 양육자의 공감적 기능, 다시 말하면 자기를 진정시키고 긴장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이상화 자기대상의 기능의 결여로 인한 자기의 결함을 메우기 위해 마약과 같은 중독성 물질을 사용하는 중독자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자기의 내적구조에 결핍된 달램과 진정의 효과를 마약에서 찾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사용하는 중독성 물질은 그들이 갈망해 하는 자기대상의 대체물이 아니라 결핍된 자기구조 안에 있는 자기 결함의 대체물이다. 또한 이상화된 부모원상과 관련한 외상은 자기애적 욕구를 성 도착적 환상이나 행동으로 표현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경향들 역시 자기애적 상처로 인한 결함이 있는 자기를 안정시키려는 시도이다. 또 한편으로 이러한 외상을 가진 사람들은 끊임없이 외부의 이상적인 대상들을 찾아 헤매게 되는데, 이들은 그 대상들을 이상화함으로써 자기구조의 결핍으로 인해 스스로 부여하지 못하는 인정과 지도력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이다.5)
자기의 병리(psychopathology of the self)
코헛에게 있어서 자기의 병리는 이처럼 자기의 핵을 이루는 두 축의 자기, 즉 과대적 자기의 축과 이상화된 부모원상의 축의 자기가 양쪽 모두 잘 발달될 기회를 잃어버린 것에서 비롯된다.6) 이로써 발생되는 자기의 결함은 자기대상의 공감적 반응의 심각한 실패에서 기인하며 그 실패는 대개 자기대상의 자기애적 결함에서 온다. 더 나아가 코헛은 이러한 자기 발달의 정지로 인한 자기의 장애가 모든 정신 병리의 근원이라고 보고 있는 바, 결국 정신 병리의 발생에 있어서 자기의 결함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자기대상의 기능과 역할에 중요한 비중을 두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코헛은 자기의 병리를 크게 이차적 장애와 일차적 장애로 분류하고 그 중 일차적 장애를 다시 다섯 가지로 하위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7) 자기의 이차적 장애(secondary disturbances of the self)는 자기의 구조가 손상되지 않은 확고한 상태로 삶을 경험하면서 생기는 자기의 반응들(분노, 절망, 희망)이 여기에 속한다. 즉 경험되는 삶의 상황에 따라 자존감이 높아지거나 낮아지기도 하고, 승리감과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로는 좌절에 직면해서 낙심과 분노를 경험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기의 반응들은 그 자체로는 병리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코헛은 이러한 반응들 역시 자기구조의 건강한 포부와 목표를 설명해 주는 자기심리학의 틀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적으로 자기의 병리와 관련한 코헛의 관심은 이차적 장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발달적 장애와 관련한 일차적 장애의 분류에 있다.
코헛은 자기의 일차적 장애(primary disturbances of the self)를 정신증(psychosis), 경계선 상태(borderline state), 분열적 성격과 편집적 성격(schizoid and paranoid personality), 자기애성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자기애성 행동장애(narcissistic behavior disorder)의 다섯 가지 병리들로 구분하고 있다. 코헛은 이러한 다섯 가지의 병리들을 자기를 형성하고 있는 응집력과 자기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의 정도에 따라 다시 두 개의 그룹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즉 정신증, 경계선 상태, 그리고 분열적 성격과 편집적 성격의 세 가지 병리들과 나머지 두 개의 자기애성 장애들로의 구분이다.
앞선 세 가지의 병리들에 대하여 코헛은 이 병리들의 부분에 다소간 효과적인 자기의 방어구조들을 세우고 있다 하더라도 이 병리들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취약한 자기구조를 나타내는 것으로 영구적이고 만성적인 자기해체와 자기쇠약, 그리고 심각한 자기 왜곡을 나타낸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형태의 정신 병리는 자기의 장애 정도가 심각하여 분석가와 환자사이에서 진행되는 해석과 분석 작업에 의한 치료가 원칙적으로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중 두 가지의 자기애성 장애들은 이와 대조적으로 구체적인 핵자기의 형태가 초기 발달단계에서 확립되어 있다. 그래서 이들 장애에서는 환자가 분석가와의 안정적인 전이를 형성할 수 있을 만큼은 어느 정도 자기의 응집력이 유지되므로 분석과 치료가 가능하다고 코헛은 설명한다.
자기의 구조적 결핍과 그 치료 가능성에 관련하여 자기의 병리에 관심을 두었던 코헛은 자기심리학의 틀 안에서 자기애성 장애를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자기애성 행동장애로 서술하고 있다. 이 두 가지의 자기애성 장애들은 자기해체와 자기쇠약 그리고 자기왜곡이 나타나는 것에서는 분석과 치료가 불가능한 앞선 세 가지의 병리들과 같은 맥락을 가지는 자기의 장애이나, 이 두 가지의 자기애성 장애에서 나타나는 자기 장애의 증상들에서는 단지 일시적으로 약해져 있거나 왜곡되어 있는 자기가 드러날 뿐이다. 따라서 적절한 분석과 치료를 통해서 극복이 가능해진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행동장애는 그 발생 원인에 있어서는 본질적으로 동일하지만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자기애적 결함이 내적(autoplastic) 증상으로 표현되는 경우이고, 자기애성 행동장애는 그것이 외적(alloplastic)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이다. 즉 자기애성 성격장애에서는 무기력하고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과민반응을 보이거나 자신의 신체에 대한 건강염려증, 수치심 혹은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인 증상들이 나타나고, 자기애성 행동장애에서는 성도착이나 중독증 혹은 반사회적인 비행과 같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주물애착이나 섭식장애 역시 코헛은 중독의 연장선상에서 자기애성 행동장애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처럼 증상들이 나타나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유형의 증상들은 모두 약하고 결함이 있는 자기의 표현들인 것이며, 따라서 자기가 잘 발달되지 못한 구조적 결핍을 메우고 회복하려는 방어적 시도들인 것이다. 이러한 가설을 중심으로 자기심리학을 정립하는 데에 기반이 된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범주에 코헛은 관심을 기울였고 그 임상적 분석을 통해 자기애성 성격장애에 대한 치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1) DSM의 진단적 이해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진단하는 것이 있어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현대 정신의학의 정신장애 진단기준을 참고하게 되는데,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임상전문가와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공식적인 정신장애 분류체계로서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을 들 수 있다. 이것의 현재 사용되고 있는 가장 최근 개정판으로는 DSM-IV-TR이다. 여기에서는 심리적 증상과 증후군을 중심으로 정신장애를 분류하고 있으며 그 분류체계는 5개의 축으로 되어 있는 다축적 진단 체계(multiaxial system)로 구성되어 있다. 즉 이러한 다섯 차원의 진단 정보들을 수집함으로 개인의 정신장애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을 요약하여 진단하도록 하고 있다.8)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징은 자기애(narcissism)의 라는 이름에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마치 지나친 것으로 보이는 자기사랑 혹은 자기도취, 나아가 지나친 자기중심성 그리고 왜곡된 자기존중감등을 들 수 있고 그러한 특성들로 인해 타인과 더불어 삶을 함께 살아가는 것과 관련한 사회적 부적응성을 나타낸다. DSM-IV-TR의 진단기준9)에 기술되어 있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주요 증상들은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과장된 지각, 칭찬에 대한 욕구, 감정이입의 결여와 같은 광범위한 양상들이 성인기 초기에서 시작되어 다양한 상황에서 아홉 가지의 진단기준들 중 다섯 가지 혹은 그 이상의 특성들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진단적 특성들을 살펴보면, 자신의 중요성에 대해 지나치게 과장된 자존감이 있고 끝없는 성공, 권력, 탁월함, 아름다움 혹은 이상적인 사랑에 대한 공상에 자주 빠진다. 자신이 매우 특별하다고 여기기에 특별한 상류층의 사람들이나 그런 기관에서만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고 또 그러한 사람들이나 그런 기관에서만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늘 과도한 찬사를 요구하고 특별한 대우를 바라는 특권의식을 가진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타인들을 이용하게 되는 착취적인 대인관계를 가지며 타인들에 대한 공감능력이 결여되어있다. 그리고 자주 타인들을 질투하거나 타인들이 자신을 질투하고 있다고 믿으며 거만하고 방자한 행동이나 태도를 보인다.
2)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두 유형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위와 같이 DSM-IV-TR의 진단적 특성들을 기준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경험적으로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개인적, 사회적 상호작용의 양상에 따라 자기애성 성격의 하위유형들이 구분되기도 한다. 폴 윙크(Paul Wink)는 그의 경험적 연구를 통하여 드러난(overt) 자기애와 은밀한(covert) 자기애의 두 유형을 구별하였다.10) 윙크의 구분에 따르면, 드러난 형태의 자기애는 자기애적 과대성(narcissistic grandiosity)으로 인해 자기를 과시하거나 자기 중요성을 드러내는 양상이 매우 직접적으로 나타나며 따라서 타인들의 주목과 관심을 받는 것에 집중하는 양상으로 드러난다. 즉 이 유형의 드러난 자기애는 앞서 살펴보았던 DSM-IV-TR의 진단기준이 제시하고 있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윙크가 구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유형인 은밀한 자기애는 드러난 자기애의 특성들에서처럼 객관적으로 잘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표면적으로는 드러나 있지는 않으나,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무의식적인 자기애적 과대성으로 하여 낮은 자기 신뢰도나 자기주도성의 결여, 또는 우울함과 소심함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은밀한 자기애를 가진 이들은 외부의 반응에 매우 예민하고 또 그 반응을 염려하며 어떤 일을 주도하는 데에 있어서 자신이 없고 주저하며 불안해한다. 또한 지나치게 자신의 감정을 억제 하고 방어적이며 쉽게 상처를 받는 탓에 외부로부터 수치를 경험할 만하거나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만한 상황은 아예 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자기애성 성격을 이렇게 두 개의 하위유형으로 구분하려는 시도는 글랜 가바드(Glen O. Gabbard)의 연구에서 역시 나타나는데, 그는 앞서 DSM-IV-TR에서 기술하고 있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진단기준과 부합하는 드러난 형태의 자기애를 무감각형(oblivious) 자기애로, 은밀한 형태의 자기애를 과민형(hypervigilant) 자기애로 각각 구분하고 이 두 가지 유형의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징들을 서로 대비하여 기술하고 있다.11) 가바드는 이러한 구분을 통하여 DSM-IV-TR의 진단기준들이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연속선상의 한 부분인 드러난 무감각형 자기애만을 자기애성 장애라고 제시하고 다른 한쪽 부분인 과민형 자기애가 드러내는 자기애성 장애의 양상은 가려내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DSM-IV-TR의 진단기준들에 드러난 자기애의 특성들만이 제시되어 있는 까닭은 앞서 DSM-IV-TR의 진단체계에 대하여 살펴보았듯이 아마도 DSM의 정신장애 분류체계의 구조적 원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DSM-IV-TR의 정신장애 분류는 장애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의 기술적 특징에 근거해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외형적이고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에 의해 장애를 구분하며 분류한다. 따라서 자기애라는 장애의 같은 원인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드러난 혹은 무감각형 자기애성 성격의 특성들은 그것들이 표면적으로 뚜렷하게 분별될 만큼 드러나는 증상들을 외형적으로 보이고 있지만, 은밀한 혹은 과민형 자기애성 성격의 특성들은 쉽게 눈에 띄지 않고 표면적으로 자기애성 성격이라고 진단하고 평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DSM에서는 드러난, 무감각형 자기애만이 자기애성 성격장애로서 진단적으로 분류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3) 코헛의 자기애성 성격장애
코헛의 자기심리학 이론의 틀 안에서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유발하는 자기 병리의 원인은 자기의 발달과정에서 특히 유아기에 자기애가 충분히 발달될 기회를 잃어버린 탓에 건강한 이중 축의 자기구조를 구축할 수 없었던 발달의 결핍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생긴 자기의 결함은 유아기의 과대적 자기와 이상화된 부모원상의 자기애적 욕구에 충분한 사랑과 공감으로 적절하게 응답해줘야 할 거울 자기대상과 이상화 자기대상의 기능의 외상적 결핍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자기애성 성격장애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들은 모두 자기구조의 결핍으로 인한 자기의 결함에서 비롯되어 나타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코헛의 시각으로부터 자기애성 성격의 겉으로 드러난 증상들을 보게 되면 발달과정에서 채우지 못한 자기구조의 결핍으로 인한 자기의 자기애적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양 쪽 극단(드러난 자기애와 은밀한 자기애)의 방어적 증상들로 자기의 성격을 드러내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DSM-IV-TR의 진단기준을 포함하여 앞서 논의 되었던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양상들은 손상된 자기애로 하여 가지게 된 자기의 결함을 메우고 회복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인 것이다. 그것이 한 쪽 극단에서는 외향적으로 과시적인 행동을 하거나 잘난 척하며 자기가 항상 타인으로부터의 칭찬과 관심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과대적 양상으로 나타나고, 또 한 쪽 극단에서는 자신이 없고 우울하며 소심하고 불안한 과민형 양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코헛은 이처럼 양 극단으로 드러나는 자기애의 증상들을 정신의 두 가지 분리를 통한 자기의 부정과 억압의 방어구조안에서 분석함으로써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두 유형에 대한 인식과 그 공통된 자기 병리의 원인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코헛은 수평적 분리로 인한 억압의 방어를 통해서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들은 수직적 분리로 인해 드러나는 과대적이고 과시적 양상보다 훨씬 눈에 잘 뜨이지 않으며 종종 확인하기가 어려워서 간과되기 쉽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즉 코헛 역시 드러난 자기애의 방어적 양상보다 은밀한 자기애의 방어적 양상이 더 알아보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헛은 관찰과 분석을 통해서 드러난 자기애의 과시적 방어증상들을 전혀 발견할 수 없는 경우조차도 은밀한 자기애가 대부분의 자기애성 성격장애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12)
코헛의 이러한 임상적 연구는 은밀한 자기애가 그 성격의 밑바닥에 깊이 억압되어 자리 잡고 있어서 자기의 결함은 비교적 조용하게 잘 드러나지 않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지만 자기애성 성격장애 안에 항상 현존하는 형태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코헛은 사실상 드러난 자기애의 양상보다는 은밀한 자기애의 양상들의 관찰과 분석을 더 중요시 했고 그것들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였다고 보인다. 코헛이 울프와 함께 서술한 자기 병리의 몇 가지 임상적 증후들에 대한 고찰은 이러한 드러나지 않는 자기애성 성격의 세밀한 분석을 잘 보여주고 있다.13)
그 증후들로서 충분히 자극되지 못한 자기(understimulated self)는 어린 시절에 충분히 반영 받는 자기대상 경험이 지속적으로 꾸준히 이뤄지지 않은 경우에 생긴다. 이들은 살아있는 생동감이 부족하고 권태를 느낀다. 자극을 추구하기 위해서 이들은 자기의 몸을 흔들거나 자해를 함으로써 죽어있는 것 같은 공허한 느낌을 없애려 하거나 때로는 복잡한 성생활, 도박 혹은 중독과 같은 행위들을 통해서 자기를 자극하려 한다. 그러나 반대로 너무 과도하게 자극된 자기(overstimulated self)는 어린 시절 자기대상으로부터 공감적이지 않은 지나친 반응을 받았거나 혹은 시기적절한 반응을 받지 못한 자기이다. 이들은 비현실적인 환상으로 하여 고통스런 긴장과 불안을 나타내며, 자신들의 성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회피한다.
또한 조각난 자기(fragmenting self)는 어린 시절 자기대상으로부터의 심각한 공감적 반응의 전체적인 결핍으로 인하여 자기감에 대한 통합이 잘 이루어 지지 않은 자기이다. 이들에게서는 흐트러진 옷차림과 자세, 초조함과 불안, 신체 건강염려증 등이 나타나고 이들 스스로 자기가 산산조각이 나는 것으로 느끼거나 자기 연속성 혹은 자기 응집성의 상실을 경험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과도하게 부담을 진 자기(overburdened self)는 어린 시절 전능한 자기대상과 융합할 기회 자체도 가지지 못한 자기이다. 그래서 스스로 자기를 달래주거나 자기를 진정시킬 수 있는 능력을 전혀 얻지 못한 자기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감정이나 불안을 잘 나타내지도 못하며 세상을 적대적이거나 위험한 것으로 경험한다.
이처럼 코헛이 분석한 자기 병리의 증후들은 대부분 드러난 자기애의 양상과는 전체적으로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증후들은 사실 얼핏 관찰하여서는 겉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지도 않으며, 또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DSM-IV-TR에 준하여 구별되고 있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판별되기도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헛이 제시하고 있는 수직적 분열과 수평적 분열의 방어적 양상들에 의거해 볼 때, 이러한 증후들로 인해 나타나는 자기애성 성격의 증상과 원인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결함이 있는 비극적 자기(tragic self)의 돌봄
코헛은 자기의 병리를 논하면서 자기애적 결함을 가지게 되는 인간의 속성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이 가지는 관계적 삶 가운데서 그 관계로부터 자기가 추구하는 자기의 건강한 구축에 실패한 비극적 인간(Tragic Man)을 말한다. 코헛이 볼 때 프로이트의 고전적인 심리학적 관점에서 묘사될 수 있는 인간은 쾌락의 원칙에 따라 쾌락을 추구하는 욕동을 만족시키려 하지만 환경적인 압력과 특히 내적갈등으로 해서 그렇게 할 수 없는 죄책감에 짓눌린 인간(Guilty Man)이다.14)
즉 프로이트의 정신 병리의 원인은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심리내적 갈등으로 인하여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에서 온다. 그러나 코헛의 자기심리학은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서 인간에게는 주체적으로 창조적이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응집력 있는 자기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코헛이 말하는 자기의 병리는 그러한 자기구조를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대상과의 관계적 실패로부터 결함이 있는 자기존재를 어쩔 수 없이 경험하게 되고 또 그러한 고갈된 자기(depleted self)를 채우고 회복시키려는 비극적 인간의 분투를 표현하고 있다.15)
이러한 비극적 자기를 위한 돌봄의 열쇠가 되는 것은 코헛의 자기심리학에서 거듭 강조하다시피 바로 치료자 혹은 돌보는 이의 공감적인 자기대상의 기능이다. 이는 자기애적 상처를 가진 이들의 과대적 자기를 공감적으로 이해하고 인정해 주며 지지해 주는 돌보는 자의 거울 자기대상의 기능과, 그들이 이상화하려는 대상으로서 그들에게 충분히 융합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돌보는 자의 이상화 자기대상의 기능의 중요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자기대상 기능들은 자기의 관계적 삶의 실패로부터 그 회복을 가져다준다. 따라서 돌보는 이는 자기애적 상처를 가진 이들과의 공감적인 관계적 삶을 통해서 그들의 손상된 자기가 회복되어 다시 건강한 자기구조를 구축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그들의 자기대상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충분한 자기대상의 역할들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감적 수용과 이해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즉 앞서 살펴보았듯이 드러난 자기애뿐만이 아니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자기애의 모습들까지 포괄하는 자기애성 성격의 양상들에 대한 세심한 주의와 이해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그 양 극단으로 나타나는 자기애성 성격의 양상들은 그것이 과대적, 과시적 성향이든 아니면 소심하고 회피하는 성향이든 간에, 나타나고 있는 양 극단의 양상들 그 자체가 결핍된 자기구조로 인해 자기애적 상처를 보호하고 메우려는 방어적 성격들의 표현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가령 자기애성 성격에서 드러나는 지나친 자기중심적 태도와 과도하게 표현되는 자신의 과대성과 과시성은 실제 자신의 텅 빈 공허감과 무력감, 그리고 낮은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결핍으로 인한 자기의 결함을 메우기 위해서 방어적으로 나타나는 표현들인 것이다.
따라서 이들을 돌보는 것에 있어서 중요하게 관심해야 하는 것은 그 방어적 표현들 자체에 대한 피상적 관찰과 이해가 아니라, 그것들이 그렇게 방어적으로 나타나게 될 수밖에 없게 되는 그들이 가지는 자기애적 상처의 원인이다. 코헛에게 있어서 자기애적 상처는 유아기의 미숙하고 어린 자기가 부모 혹은 양육자로부터 따뜻한 공감과 사랑을 지속적이고도 충분히 받지 못함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한 발달적 결핍은 약하고 깨지기 쉬운 결함이 있는 자기로 귀결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흔히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자기애”의 자기도취적이거나 심지어는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성향들로 보이는 양상들은 사실은 지나친 자기사랑이 아닌 심각한 자기의 결함으로 인하여 방어적으로 표현되는 태도들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이제껏 논의되었던 코헛의 자기심리학은 재조정된 자기애의 개념과 자기애성 성격장애에서의 자기 결핍에 대한 병인의 함축을 통해서 자기만을 드러내며 자기의 유익만을 위하는 것으로 보이는 인간의 이기성이나 자기중심성이 아닌, 결함 있는 자기의 심리적 장애와 싸우는 인간의 비극적 속성을 새롭게 드러내준다. 이는 궁극적 자기대상으로서의 하나님 경험 대한 유비에 의거해 볼 때, 평생 유지되어야 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적 삶의 본질적 중요성과 그것에서 실패하게 될 때 건강하고 성숙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결함 있는 인간의 속성 역시 내포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공감적인 자기대상의 기능과 역할을 상호적으로 담당함으로서 자기애적 상처를 가진 이들, 즉 결함이 있는 자기를 가진 이들을 포함하여 더 넓게는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자기의 상처들을 서로 이해하고 돌보는 것은 기독교공동체 안에서 역시 필요하다. 이는 바로 궁극적인 자기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서로 체험하게 하는 것이며 또한 각자의 궁극적인 자기대상으로서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반복하여 새롭게 회복할 수 있도록 서로 도울 수 있게 되는 까닭이다.
홍이화 l 박사는 미국 에모리(Emory)대학교(M. Div.)와 드루(Drew)대학교(Ph.D.)에서 공부했다. 한국목회상담협회 전문가이며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등에서 목회상담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구논문으로는 , , 등이 있다.
글쓴이 / 홍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