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촬영현장을 한번이라도 방문해 본 배우들이라면, 영화배우들이 얼마나 '작게' 말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극장에서는 배우들의 목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리겠지만, 실제로 촬영 현장에서 영화배우들은 정말로 '작게' 말한다.
이번 달 초, 스튜디오 수업의 일환으로 영화현장 실습이 있었다.
상업 영화 '감시'의 촬영장에 배우로서 체험해보는 것이 그것이었는데, 실습을 다녀온 스튜디오 배우들은 주연배우 설경구가 대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말하는 것을 실제로 보았다며 다시한번 '작게' 말하기의 중요성에 대해 정확히 인식했다고 이야기 하였다.
그렇다. 영화배우들은 '작게' 말한다!
그렇다면 '작게' 말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작게' 말하면, 영화연기에서 요구하는 '자연스러움'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일까?
무조건 사운드 볼륨만 줄이면 '작게' 말하게 되는 것일까?
만약, 정말로 '작게' 말해도, '나'의 목소리가 전달은 되는 것일까?
'작게' 말한다는 것은 단순히 볼륨을 줄이는 일이 아니다. 영화가 왜 배우들에게 보다 '작은' 소리를 요구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다.
헐리웃의 유명배우인 '마이클 케인'의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해보자.
영화배우라면 자기가 맡은 배역에 대한 소재들을 충분히 책임지고,
그 캐릭터가 함직한 가장 비밀스런 생각까지 유추해내면서 배역의 삶과 충분히 조율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자기를 지켜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듯,
(중략)
영화에서 '연기acting'하는 것이 보인다면 그 배우는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카메라 앞에서 뭔가를 보여주려고 '연희performing'를 하는 것이 포착된 순간,
배우로서의 기회는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배우는 아주 내밀한 사적 공간에서 사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개런티를 받고 자신에게 주어진 대사를 관객을 위해 낭독하고 있을 뿐입니다.
착각이여 안녕! 배우라는 직업이여 안녕!
(중략)
초기 유성 영화 시절에는 연극판에서 훈련된 배우들이 영화 쪽으로 건너왔습니다.
이들이 연극에 맞춤한 방식으로 연기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죠. 편하게 말을 하지 못하고 극장 맨 뒷자석 발코니에 앉은 사람에게 들릴만큼 웅변조로 대사를 했습니다.
영화 촬영장에는 극장 발코니 좌석이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나 봅니다.
......
하지만 지금은 음향 기술이 고도로 발달했습니다.
요새는 셔츠 칼라 안쪽에 마이크를 부착하거나 옷 주름 사이에 끼워 넣어 숨길 수 있기 때문에
배우가 나지막이 속삭이는 소리까지 죄다 들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가 인위적으로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마이클 케인 '명배우의 연기수업' p33-35
마이클 케인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배우는 현장에서 연기할 때 마치 자기를 지켜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듯, 연기해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뒤집어 다시 말하면, 영화 감독과 촬영 스텝들은 현장에서 살아가는 배우들의 사적인 시간을 몰래 훔쳐보는 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니, 연기를 할 때 더욱 내밀하게, 더욱 사적으로! 더욱 개인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극이나 뮤지컬에서는 배우가 연기훈련을 할 때, 모든 공간을 채우며 소리를 내는 훈련을 하고, 또 모든 공간을 채울만큼 강한 신체적 에너지를 내뿜어야하지만, 영화는 이와 달리 모든 공간을 채우거나 모든 관객을 의식할 필요가 없이 배우가 자신이 처한 사적인 순간과 그만큼의 공간에 더욱 몰두해야 영화가 요구하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마치 자기를 지켜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듯,
그러니까 자신을 엿보는 카메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말이죠."
"영화에서 '연기acting'하는 것이 보인다면 그 배우는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카메라 앞에서 뭔가를 보여주려고 '연희performing'를 하는 것이 포착된 순간,
배우로서의 기회는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배우는 아주 내밀한 사적 공간에서 사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
이를 위해서 배우는 자신의 확장된 에너지를 밀도 있게 집약시켜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카메라 프레임에 대해 생각해야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샷의 크기에 따라 소리의 볼륨을 조절해야만 한다. 프레임이 타이트 해질수록, 즉, 클로즈업에 가까워질수록 배우는 소리를 낮고 밀도있게 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마이크의 위치를 파악해야만 한다.
영화연기를 할 때, 배우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연기호흡을 맞추게 될 배우의 '귀'에 들리게 하려하거나, 이보다 심한 경우는 촬영장 전체에 자신의 대사가 들리도록 소리를 낸다.
그러나 기억하라!
우리가 소리를 전달할 대상은 상대배우의 귀도 아니고,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감독은 더더욱 아니다.
오로지 마이크가 우리가 소리를 전달할 대상인 것이다.
마이크가 상대배우의 귀라고 가정할 때 여러분은 큰 소리로 말할 것인가?
영화는 인물들의 삶을 훔쳐본다.
관객은 인물들의 삶을 훔쳐보며 인물들의 비밀을 공유하기도 하고, 인물들에게 깊이 동화되기도 한다.
영화관에 관객이 아무리 많아도 영화의 캐릭터들은 신기하게도 영화를 보는 한사람...한사람...의 가슴 속 깊이 파고들어 관객 개개인의 가슴을 후벼파기도 하고, 깊은 동화를 일으키키도 한다.
그렇다. 영화배우는 영화 관객 개개인과 승부를 봐야하는 것이다. 뮤지컬이나 연극은 맨 뒷자석의 관객 모두와 호흡해야 하지만, 영화는 촬영할 때 보다 내밀하게, 보다 밀도있게 연기해야만 관객 개개인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기억하라.
영화연기에서 자연스럽다는 것은, 내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솔직해지는 것이다.
인물로서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것 말고는 해결책이 없다.
자신의 모든 비밀을 단 한사람에게만 폭로하듯, 영화배우는 단 한명의 관객에게만 자신의 내밀화된 삶을 드러내듯 연기해야만 한는 것이다.
맞다! 그래서 영화연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래서 영화연기는 매력있다.
'작게' , '밀도있게', '내밀하게'.
오늘은 이 세 단어를 여러분에게 각인시키고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