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단상 (23) 심리학 (18) (18) 철학 (13) 일기 (12) Diary (8) 건강 (7) 정보 (6) 리뷰 (5) (5) 연기 (5) Google (4) 강신주 (4) 경제 (4) 구글 (4) 분당 (4) 분당도서관 (4) 아르바이트 (4) 알바 (4) 정신과 (4) Diet (3) blogger (3) blogspot (3) club (3) tistory (3) 게임 (3) 공연 (3) 다이어트 (3) 블로거 (3) 블로그 (3) 연극 (3) 클럽 (3) 티스토리 (3) 88 (2) Facebook (2) acting (2) bundang (2) musical (2) review (2) 강연 (2) 경기 (2) 공타쿠 (2) (2) (2) 다이어리 (2) 디아블로 (2) 뮤지컬 (2) 사랑 (2) 소설 (2) 수필 (2) 스타벅스 (2) 실용 (2) 음모론 (2) 의료 (2) 정자동 (2) 컴퓨터 (2) 패션 (2) 페이스북 (2) 한식당 (2) 해를 품은 달 (2) Apple (1) Doodle (1) Frace (1) How I met your mother (1) Paris (1) Rumor (1) TV (1) ad (1) adsense (1) apart (1) apartment (1) app (1) book (1) chocolate (1) citicard (1) coffee (1) dream (1) essay (1) fun (1) gym (1) gym ball (1) home (1) house (1) iPhone (1) kongtaku (1) life (1) lotte (1) lotteworld (1) love (1) macbook (1) massage (1) party (1) starbucks (1) starbucks via (1) test (1) travel (1) vip (1) waiting (1) youtube (1) 강남 (1) 경제학 (1) 고민 (1) 과거 (1) 광고 (1) 교육 (1) 구글 로고 (1) 구글스트리트뷰 (1) 국가장학금 (1) 국어 (1) 군대 (1) (1) 귀마개 (1) 귀싸개 (1) 급체 (1) 기다림 (1) 기독교 (1) 기억 (1) 김남길 (1) 김수영 시인 (1) 난청 (1) 노하우 (1) 놀이동산 (1) 닌텐도 (1) 대출 (1) 대학부 (1) 더블에잇 (1) 두들 (1) 듀벨 (1) 드라마 (1) 떡볶기 (1) 뚜레주르 (1) 라캉 (1) 롯데 (1) 롯데월드 (1) 루머 (1) 루이비통 (1) 마루타 (1) 마사지 (1) 맛집 (1) 맥북 (1) 메가박스 (1) 명언 (1) 명함 (1) 모범생들 (1) 무료명함 (1) 미금 (1) 미드 (1) 박경철 (1) 배구 (1) 버블 (1) 법칙 (1) (1) 부동산 (1) 블리자드 (1) 비담 (1) 비아 (1) 사고 (1) 사전 (1) (1) 색다른 상담소 (1) 생체실험 (1) 선택 (1) 소망 (1) 소망교회 (1) 소음 (1) 수리 (1) (1) 스타벅스 비아 (1) 스타일 (1) 스트립클럽 (1) 식당 (1) 신사동 (1) 신사역 (1) 신용카드 (1) 실험 (1) 씨티은행 (1) 씨티카드 (1) 아이폰 (1) 아토피 (1) 아파트 (1) 애드센스 (1) (1) 어플 (1) 어플리케이션 (1) 에릭 슈미트 (1) 엘리드 (1) 여자 (1) 여자배구 (1) 여행 (1) 영화 (1) 예매 (1) 예비군 (1) 예술 (1) 외모 (1) 욕망 (1) 유투브 (1) 음식 (1) 음식점 (1) 음악 (1) 의학 (1) 이효석 (1) 인드라 (1) 인생 (1) 인터넷 (1) 일가 (1) 자본주의 (1) 자유이용권 (1) 잡다한 생각 (1) 장래희망 (1) 장학금 (1) 전시 (1) 전쟁 (1) 정신분석 (1) 정의 (1) 정자 (1) 정자역 (1) 정치 (1) 종교 (1) 주식 (1) 주역 (1) 지갑 (1) 지식 (1) 짐볼 (1) (1) 철학자 (1) 청목 나들이 (1) (1) 초콜릿 (1) 추억 (1) 커피 (1) 테스트 (1) 티비 (1) 파리 (1) 파티 (1) 프랑스 (1) 한가인 (1) 한국장학재단 (1) 화장품 (1) 환불 (1)

2013년 4월 15일 월요일

더 내려놓음 요약



더 내려놓음  줄거리 요약.


내려놓음 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내 자아(自我)가 죽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필자는 내려놓을 때 하나님으로 채워진다 라고 강조하며 설명함으로써 바로 내 자아가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을 때, 주께서 내 안에서 다시 사신다는 말씀을 설명하고 있다.
즉 신자들이 개개인의 삶의 영역에서 자신이 추구하던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음성에 반응하려고 할 때, 어떻게 구체적으로 순종의 삶을 살며 더 깊은 단계의 헌신으로 나아갈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자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가복음 15 11~32절 돌아온 탕자의 비유 말씀을 근간으로 둘째 아들의 자기애(自己愛)와 첫째 아들의 자기의(自己義)라는 두 가지 개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기애와 자기의를 버린다는 것은 우리에게 좀더 익숙한 표현으로 정리해보면 나의 자아 내려놓기 내지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기 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더 사랑하고 더 깊이 만날수 있는가는 자신의 자아문제를 성찰하는 깊이와 맞물려 있다. 자아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여전히 아버지 근처에 있지만 아버지를 누리지 못하는 상태의 삶을 지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1부 자기애(自己愛) 내려놓기

1장 하나님만을 온전히 순종하고 있는가

그저 말씀만 하십시오. 라고 순종하는 기도를 하고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지 못하는 이유는 말로는 순종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정작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통보하는 식의 기도, 일을 벌여놓고 하나님께 뒷수습해 달라는 것이 우리가 하는 기도의 주요 내용이다. 우리가 정하고 바라는 기도목록만이 우리의 기도라면 그런 기도목록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 응답 받는 기도를 원하고 하나님과 하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기도부터 바꿔야 한다. 하나님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그저 순종하겠습니다. 이 기도의 핵심은 순종하려는 마음이다. 한국의 부모들에게 자녀의 대학진학문제가 특히 그렇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을 원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다.
목이 좁은 항아리에 바나나를 넣고 원숭이가 다니는 길목에 덧을 놓아 원숭이를 잡는 남미 인디언 부족의 방법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항아리 속 바나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나나를 손에서 놓는 것이 우리를 자유하게 만드는 길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붙잡혀 있다. 특별히 우리를 가장 집요하게 묶고 있는 것이 바로 자신에 대한 집착이다.
2장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죄가 되나요

우울증의 배후에는 극도의 자기애가 숨어있음을, 자기가 상처받았다고 느끼고 그 상처를 핥고 핥으며 자기 연민에 빠진다는 것이 있다. 상처를 받는 것 자체가 죄의 결과이다.
상처를 곱씹으며 자기 연민에 빠져서 나는불쌍한 존재야, 세상에 나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
라고 나는 외로워 라며 점점더 깊은 감정의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 우울증이다.
단순히 착하고 좋은 교인이 되는 것 만으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대면하여 만날 수 없다.
필자의 아내는 우울증을 극복하면서 복음의 핵심은 내 자아가 십자가에 못박혀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내 안에 죄인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나서 보니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지칭했던 사도 바울의 말년의 고백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듯이

아주 많은 신자들의 경우, 예수님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데서 멈추어버린다. 더 나아가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비로서 십자가가 나에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례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내 자아가 죽는 것이다.
우리의 자아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은 우리 힘으로는 그것을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성령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복음을 새롭게 경험한 후에도 지속적인 영적 싸움은 계속될 수 있다.
자신안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통치 방법에 대해 거스르고 싶어하는 본성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3장 나보다 앞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필자는 몽골의 기독교 유적지 답사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간증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획은 너무나 정교하고 정확하셨다. 우리의 실패도, 우리의 고난도, 우리의 약함도 하나님 앞에 드려질 때 그리고 하나님 말씀하십시오 종이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시는 것을 간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일하는 방식은 하나님이 원하는 타이밍에 하나님의 방식대로 일하신다.
우리는 예측가능한 시회 속에서 살아가며 예측 가능한 일들만 추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일 하시도록 우리가 기회를 드리기 보다는 우리의 계획과 경험과 고집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간다.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면 우리는 멋진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를 누릴 수 있다.

4장 오직 아버지의 사랑으로 만족한다.

우리가 받은 많은 상처가 자신의 자아 문제 그리고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상처를 받고 또 그것을 오래오래 간직하는 배후에는 자기연민과 자기애가 있다. 문제는 상처를 받고 안 받고가 아니라 받은 상처를 어떻게 건강하게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 해결 받느냐에 있다내적치유는 내가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진단하고 또 그 부분에 직면하며 적극적인 해결책을 찾는 과정을 돕기도 한다. 그러나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상처를 해결하기 위한 어떠한 조명도 받을 수 없다.
자신의 죄를 해결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예수님과 함께 나도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다.
어쩌면 주변을 향해 쌓고 있는 방어벽을 무너뜨리는 것이 더 적극적이고 근원적인 상처 해결책이 된다. 내가 나를 보호하려 하거나 보복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주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시고 위로해 주실것을 바라는 것, 겉보기에 피동적으로 보이지만 이것이야 말로 확실한 대책이다.

5장 내 노력으로는 내려놓을 수 없다.

우리 하나님은 불 같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자기 사랑에 빠져서 아버지를 떠난 아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기 위해 그의 삶을 곤경으로 몰아 넣으신다. 자기자아에 대한 집착은 매우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런 연단의 과정 없이는 빠져 나올 수 없다.
둘째 아들이 다시 아버지를 만났을 때 그는 분명히 변화 되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의 집이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아버지의 품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어서 아버지를 떠나간 것이 명백한 잘못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하나님 없이 스스로 높아지려 하고 스스로 행복해지려 하거나 하나님을 통해 내 근본적인 욕심을 채우려 하는 것은 잘못된 자기사랑이다. 자기애를 버리라는 것은 바로 잘못된 자기 사랑을 두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애쓰다가 지칠 때가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힘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다. 회개도 내가 하는 회개는 나를 변화시킬 수 없다하나님께서 시키시는 회개를 통해서만 우리는 진정한 변화를 통과할 수 있다. 이 변화의 시작은 우리가 우리 힘으로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내 자아가 주님께 항복하고 십자가에 나의 의지가 못 박히고 나서부터 성령님께서 우리 삶의 주도권을 쥐시고 변화를 이끄신다. 그 후부터 우리가 이룰 수 없었던 변화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기 시작한다.

우리 자아의 교만이 꺾이지 않은 상태라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나타나는 선행들이 자칫 자기의를 쌓아가는 쪽으로 작용하기 쉽다.
우리 주변의 많은 선행을 하는 사람가운데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하기 보다는 자신의 선함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하나님의 의가 아닌 사람의 의로 이룬 일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왜 당신의 삶이 그렇게 힘든가?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인이라고 말하면서 어느새 다른 것을 우리의 삶 가운데 올려놓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2부 자기의(自己義) 내려놓기

6장 하나님을 의지 한다면 화낼 수도 원망할 수도 없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가 가장 많이 분노하는 장소는 가정과 교회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정 그리고 교회안에 우리와 늘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곳은 하나님께서 하나님나라의 모형으로 허락하신 곳이기 때문에 사탄의 영적 고격이 가장 집중되는 곳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곳은 우리가 마음을 가장 많이 쏟는 우리 마음의 안식처이다. 동시에 이곳은 내 마음의 모난 부분이 드러나는 곳이며 내가 감추고 싶은 부분들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의 영적성장은 내보이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과 얼마나 화해하고 있는가와 깊은 관계가 있다.

내가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이과정에 나의 분노나 원한의 감정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의 분노나 원한은 실제로 내가 하나님을 전혀 의지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가 될 뿐이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 다르다는 사실을 잊지말라.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나에 대한 주변의 평가에 급급해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나는 네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보고 평가하지 않는다. 네가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내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하는 것이 내가 너를 보는 기준이다.

7장 나는 판단할 권리가 없다.

큰 아들의 모습은 이미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주님의 긍휼을 누리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는 기존 신자들의 모습을 비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의 긍휼어린 눈으로 형제 자매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 이것이 판단이다. 판단하는 그 사람에게 동일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판단하는 한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잃게 되고 그리하여 큰 아들의 모습으로 남게된다.

마태복음 76절의 말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자녀의 잘못을 지적하는 엄마의 훈계는 진주가 되지만, 잘못하고 있는 아들을 변화시킨 것은 엄마의 지적이 아니라 엄마의 따듯한 사랑이다. 우리가 지적을 받고 변화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이미 모두 매우 훌륭한 사람들로 바뀌었을 것이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격려와 사랑의 표현 그리고 눈물의 중보기도이다. 우리는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내 의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판단과 달리 분별이란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가 말로 다른 사람을 고치려 한다면 그 안에는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교만이 존재한다. (필자의 경험) 아내의 우울증과 슬럼프 기간 동안 나는 내 아내조차도 변화시킬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이 문제를 가지고 나갔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내를 변화시켜 주셨다. 내가 고치려 했다면 문제는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오래 참으셨다. 나의 나 되기 까지 오래 참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나는 겸허해 질 수 밖에 없다. 나를 오래 참으신 하나님께서는 내가 판단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도 오래 참으실 것이다.
지금은 모자라 보여도 앞으로 변화될 모습을 내다보며 기대를 가지고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분별의 지혜이다.

8장 고통 당한다고 하나님을 헤아리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특정 상황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실까?
우리의 뜻과 하나님의 뜻은 다르다. 그렇게 때문에 때로는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신다. 그러나 먼저 분명히 해둘 것은 하나님은 세심하게 우리의 상황을 살피시고 최선의 것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인생길에서 진흙탕에 빠질 때,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 바로 하나님의 도움이다. 이것을 겸손히 구하는 것이 기도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진흙바닥에서 건짐을 받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모두 포도원에 마지막으로 불려와 품삯을 받은 사람들이다.
은혜 그 자체가 아버지와 관계없는 자들에게는 불공평함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불공평함이라는 은혜 때문에 내가 구원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기도를 바로 들어주시지 않는다. 그래도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시고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합하도록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매우 섬세하게 들으시고 우리의 상황을 돌보아주시며 우리가 난처함을 당하지 않도록 인도하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어려움이나 문제를 허락하시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성장하도록 축복하시기 위해서 이다.
고난은 이면적 축복(변장된 축복)이다.
욥기의 교훈은 주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현재의 상황을 허락하신 이유를  밝혀주실 때 까지 인내로 기다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받는 고난을 낭비하지 않는 비결이다.
위기와 고난이야 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강력하게 말씀하는 순간이다. 주님은 때때로 침묵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는 우리가 겪는 모든 고난을 다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리라는 점이다. 하나님나라에 가기 전에 고통의 의미를 깊이 깨닫는 기쁨을 얻는 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아마 하나님을 뵙고서야 우리가 겪어야 했던 고통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그 고통마저 감사하게 될 것이다.

9장 하나님은 일의 성과가 아니라 마음을 원하신다.

우리는 은혜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힘들어하고 대부분 교회에서 일하다 지친다. 주일 아침부터 밤늦도록 열심히 일하면 아버지가 나를 더 사랑해 주시고 인정해 주실 거야 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매일 성경을 읽고, 훈련 받고, 교회의 여러 사역을 위해 시간을 내는 일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정비례하리라 생각한다.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고, 영적으로 더 깊어지려고 말씀을 보고, 운전을 하면서도 찬양을 듣는다. 물론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귀한 일이다. 하지만 혹시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더 많이 사랑해 주시기 않을까? 남들보다 나를 더 특별하게 대우해 주시지 않을까? 라는 동기가 밑바닥에 숨어 있다면 문제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사역 정도와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으로 부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과 무관하게 우리는 그저 하나님 앞에 용납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노력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아버지의 임재하심 안에서 엄청난 사랑과 기쁨과 평안을 경험하게 된다.
이 만큼 일하면 이 만큼의 보상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는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며 아들로서 자유를 누린 것이 아니라 품꾼의 정신을 가지고 대가를 바라며 일한 것이다.

나의 가치는 내가 하는 일에 달려있어. 내가 세상에서 인정받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내 가치를 높여야 해. 따라서 내가 하는 일만큼은 완벽해야 해. 이런 사람은 이 세상의 논리를 가지고 신앙생활도 들어와 자기도 힘들고 다른 사람들도 힘들게 한다. 그런 논리로 보니까 여기저기 잘못된 것이 보이고 판단해야 할 것들이 먼저 드러나는 것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대가를 바라며 신앙생활을 한다.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을 믿는 대가가 아닌 하나님 자신이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을 이용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경향이 있다. 여전히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된 모습이다. 결국 이 상태로는 주님의 은혜를 입고 은사를 받아도 우리의 표면만 바뀐 것이지 본질은 변화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인지하고 하나님의 자녀 된 자존감을 회복하기 까지 우리는 늘 갈등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 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나아갈 뿐이다. 구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받는다. 사랑은 선물이지 일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는 이유는 그 사역을 통해 함께 교제 나누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주께서 우리를 부르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친구가 되시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이유는 나와 그 동역의 기쁨을 함께 누리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3부 더 더 내려놓기

10장 인생 계획의 모든 결정을 맡기는 더 내려놓음

하나님은 날마다 새로움 가운데 우리를 만나주시고 더 깊은 관계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자신의 약점과 부족한 부분을 하나님께 맡겨라. 미래의 계획, 꿈꾸고 있는 비전까지 모두 하나님께 맡겨 드려라. 하나님이 왜 당신을 통해 일할 수 없는지 아는가?
당신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당신의 자아가 너무 커서 하나님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러므로 당신이 갖고 있는 틀, 당신이 고집하는 방식, 당신의 계획을 깨버려라. 그리고 주님의 것으로 채우라. 이것이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37:5)라는 말씀의 핵심이다.

요셉이 꿈을 꾸고 난 뒤 스스로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다는 이야기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그저 하나님이 요셉을 이끌어 가셨을 뿐이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것도 지기 뜻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식대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일을 원한다면 하나님께 미래의 계획표를 내어드리고 그저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하루하루 하나님 안에서 기다리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무엇이 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살아 가느냐에 있다.

계획 없이 산다는 것은  그저 편하게 지내며 즉흥적으로 산다는 것이 아니다.
나의 자아를 확대시키기 위한 계획을 내려놓고 주님이 일하시도록 내 삶의 결정권을 내어 드리는 것이다. 이때 나는 기다리며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며 하나님이 먼저 일하시도록 내 삶의 주도권을 맡겨드려야 한다.

11장 전적 의존자의 삶을 향한 더 내려놓음

예수님 부활 후, 베드로가 그 전날 물고기가 풍부한 갈릴리 호숫가에서 단 한마리의 고기도 못 잡았다는 사실이 바로 기적이다. 하나님의 완벽한 각본에 따라 짜여지 환경이라는 것이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할 때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베드로의 고백을 듣기 위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궁핍의 기적을 베푸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불행한 사건, 실패의 경험은 위장된 축복이자 기적이다.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가운데 이루어진 일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베드로처럼 고백ㄴ하도록 인도하기 위해 허락된 일이다.
우리의 관심은 늘 성공에 맞춰져 있다. 우리의 관심이 성공에 맞춰져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 수 없다. 심지어 성공이 하나님 사역의 일환으로서 성공일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붙잡으려고 하는 한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온전한 도구로 쓰임 받지 못한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의 거룩이 되어야 한다.

크리스천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성숙이다. 세상에서는 종속적인 위치에 있다가 독립적인 존재가 되면 성숙했다고 이야기 하지만, 하나님나라의 기준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영적 존재가 하나님께 의존적인 상태로 들어갈 때 그것을 가리켜 성숙이라고 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37:5)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성숙의 표징이 된다. 우리가 항복할 때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시는 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12장 아버지의 사랑을 만끽하는 더 내려놓음

쓰임 받는 것과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다른 것이다. 예수님은 마르다 와 마리아 중 예수님을 대접하기에 분주했던 마르다 보다 예수님과의 교제를 택한 마리아를 칭찬하셨다예수님께서 그 집에 오신 이유는 대접을 잘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제하며 나누기 위해서였다. 사역을 맡은 자들은 이 점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과 나와의 세밀한 교제는 마치 바이올린 현 같아서 하루라도 튜닝하지 않으면 제대로 연주할 수 없다. 사역보다 자신의 영적 영역과 가정을 돌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는 가정을 위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13장 더 내려놓기 위한 온전한 내려놓음

내려놓음이란 내가 추구하는 길과 주님이 내 인생가운데 부여하신 목적이 서로 다를 때 내가 추구하는 것을 버리고 주님의 목적을 붙잡는 것을 의미한다. 또는 내가 추구하는 것, 내가 목표로 삼았던 것이 하나님이 나를 향해 갖고 있은 뜻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하나님의 뜻에 내 추구와 목표가 부합되도록 맞추어 가는 것이다.
즉 내가 가진 열망과 내게 익숙한 길을 버려두고 주님의 뜻을 좆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세상을 향한 내 육신의 욕구가 죽고 주님의 거룩하심이 나를 지배 할 수 있도록 내 의지를 주님께 맡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내려놓음이란 나의 갈망이나 욕구를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 맞추는 과정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과 내려 놓은 삶은 항상 맞물려 가게 되어있다.
하기 싫은 일이라도 주님께서 원하시면 하겠다고 순종하는 것도 주님께 내려놓은 행위이다
하나님 안에서의 내려놓음이란 자신의 삶을 하나님으로 채우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내 열망을 하나님께 투사하며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반면에 하나님이 누리라고 주신 것들을 의도적으로  포기하는 것은 자기의 이다.
내려놓음이란 내 갈망과 소원을 버려두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것을 찾고 선택하는 것이다. 타이밍과 방식까지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바로 주님께 내려놓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성과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다. 그에 따라 분별력과 선호도로 판단하면 된다. 우리가 반듯이 하나님께 물어야 할 것은 우리의 사명, 영적 성장이나 유익, 하나님과의 교제, 섬김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 일은 하나님이 시키셨으니 이 일을 하면 주님도 이해해 주시겠지 생각하며 기도를 게을리하고 있다면 다시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과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다른 영역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한 일도 자신과의 친밀한 교제보다 우위에 설수 없음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